[뉴스토마토 조승진 기자]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국내 법체계와 달리, 오스트리아와 독일 등 유럽 등지에서는 20~30년 전부터 법에 동물이 생명체임을 명시했다. 오스트리아는 1988년(민법 제285a조), 독일은 1990년(민법 제90a조), 스위스는 2003년(제641a조)를 통해 동물이 생명체임을 명확히 했다.
이에 따라 이들 국가에서는 동물 학대에 대한 민사 소송이 가능하다. 동물이 학대 등의 이유로 상해를 입어 치료가 필요할 경우 동물 보호자가 가해자를 상대로 치료비와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 치료비가 동물 구입 비용보다 많이 들더라도 손해배상 범주에 포함할 수 있다. 국내법상 동물이 물건으로 취급돼 동물의 손해배상액이 동물 구입 가격이나 시가를 넘지 못하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다.
한재언 동물보호연대 법률지원센터 변호사는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동물이 생명체라는 점이 법에 규정된다면 정신적 손해를 비롯한 치료비, 장례비 등이 추가돼 위자료 상향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동물이 물건으로 규정돼 시장가치로 보상이 이뤄지거나, 주인의 정신적인 손해가 인정되더라도 배상 금액은 턱없이 적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오스트리아는 1988년(민법 제285a조), 독일은 1990년(민법 제90a조), 스위스는 2003년(제641a조)를 통해 동물이 생명체임을 명확히 했다. (사진=뉴시스)
동물이 법규상 생명체로 규정되면 야생동물이나 학대 동물이 소송 당사자가 되거나 후견인, 변호인을 선임할 수도 있다. 스위스에서 가장 큰 도시인 취리히에서는 ‘동물변호인 제도’를 통해 인간에게 학대받는 애완동물, 농장동물, 야생동물 등의 이익을 법정에서 대변하고 그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동물을 생명체로 여기는 점은 동물 학대에 대한 강력한 처벌에서도 드러난다. 지난해 12월부터 프랑스에서 본격적으로 시행된 ‘동물학대근절법’은 ‘지능이 있는 모든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학대 행위를 엄격히 금한다. 가정에서 동물을 학대한 사실이 밝혀지면 신고가 없어도 처벌할 수 있다. 법에 따라 최대 5년의 징역형과 벌금 7만5000유로(약 1억원)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1922년 세계 최초로 동물보호법을 제정한 영국은 꾸준히 관련 법을 개정해 나가며 동물 학대를 엄중히 제재한다. 동물 학대를 저지른다면 직장에서 해고당할 수도 있다. 지난달 1일 에 따르면 영국 경찰관 존 플레밍은 동물 학대 혐의로 인해 경찰 직위를 해제당했다. 그는 승진시험에 합격해 곧 진급 예정일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면죄부는 없었다.
존은 자신이 키우는 개를 길거리에서 걷어차고 흔드는 등 학대를 했고, 법원은 그에게 200시간의 지역 봉사와 10년 동안 동물을 기르는 것을 금지했다. 그가 키우는 개는 동물복지 담당 공무원에게 넘겨졌다. 지난해 12월에는 영국 초등학교 교사 사라 몰도스가 동물 학대를 저질러 직장에서 해고당했다. 그가 말에게 주먹질하고 발로 차는 등의 행위가 드러난 지 두 달도 안 돼 내려진 결정이다.
미국은 지난 2016년부터 동물 학대를 강력범죄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주마다 처벌 규정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동물 학대 시 최고 10년의 징역형과 약5억7000만원(50만달러)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반려견을 차 안에 두고 방치하는 것도 학대로 보는데, 이 경우 최대 징역 6개월 또는 벌금 120만원을 받게 된다. 테네시와 캔자스 등 일부 주에서는 동물 학대 가해자에 대한 신상 공개 정책이 시행 중이고, 델라웨어 주에서는 동물학대범의 동물 소유가 금지되는 경우도 있다.
법률사무소 율담의 권유림 변호사는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동물을 생명체로 보기 때문에 동물에 대한 처벌 자체가 강화될 수 있는 것”이라며 “학대받는 동물의 경우 가해 주인의 소유권 박탈이 수월하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우리 동물보호법에도 동물 학대 시 3년 이하의 징역과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등 형량은 충분한 상황”이라며 “하지만 여전히 동물을 물건으로 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4월19일 제주도의 한 사설 유기동물 보호소 관계자에 따르면 13일 이 보호소 인근에서 한 강아지가 입과 발이 노끈으로 묶인 채 발견됐다. (사진=뉴시스)
조승진 기자 chogiz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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