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수 증권부 기자
'쪼개기 상장' 등 기업의 물적분할이 소액주주들을 분노하게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번엔 '합병'이 주주들 속을 썩이고 있다. 과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사태를 떠올리게 하는 이번 동원그룹의 계열사 간 합병은 대주주에게만 유리한 합병이라는 질타를 받고 있다.
기업의 합병은 주주들에게 민감한 이슈다. 합병가액은 통상 주가를 기준으로 결정하는데, 대주주가 자신에게 유리한 시기에 합병하거나 주가를 인위적으로 움직이는 방식으로 다른 주주들에게 손실이 전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원산업(006040)과 동원엔터프라이즈의 합병비율은 1대3.839, 오너일가가 99.56% 소유한 비상장사 동원엔터프라이즈만 후한 평가를 받고 동원산업은 저평가됐다는 게 이번 논란의 핵심이다. 일각에선 이번 합병을 위해 회사가 주가를 관리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한다. 동원시스템즈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2.6배인 데 반해 동원산업은 0.6배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동원사업 가치엔 양재 본사 등 자산 재평가가 일절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합병 비율이라는 결과뿐 아니라 절차에 대한 투명성도 과제로 남아있다. 동원그룹은 이번 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외부용역보고서 등 관련 자료를 충분히 공개하거나 검토하지 않았다. 또한 동원산업의 경우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훼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순자산가치가 아닌 시가로 측정했는지에 대해 주주를 상대로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점도 문제로 꼽힌다.
이번 사건은 '선진적 거버넌스로의 도약'을 위한 중요한 계기로 주목받고 있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이 이젠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하는 중차대한 과도기에 있는데, 이런 주주 권리가 침탈되는 일이 반복돼선 안된다"며 "거버넌스를 선진국형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이번 동원산업 합병에 문제를 제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법안도 발의되고 있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7일 계열사 합병시 주가 외 자산 수익가치도 고려하도록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불공정한 합병가액으로 인해 소액주주가 피해를 고스란히 입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취지다.
그간 한국 주식시장에서 누적된 '소액주주 패싱'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반하는 기업 경영 행위 등에 대한 반감이 이번 사태로 다시 터져나오는 모습이다.
물적분할에 이어 합병까지, 기업의 분할과 합병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부가 기업이나 대주주에게 일방적으로 전이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동원산업이 이번 합병을 재고하고 첫단추를 잘 꿴다면 한국 증시가 보다 선진적인 거버넌스로 도약하는 데 의미있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우연수 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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