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검찰수사 완전 박탈) 법안' 중재안의 본회의 상정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여당이 절대 다수석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만큼 본회의 통과가 확실해 보인다. 국민의힘이 합의를 뒤늦게 뒤집었으나 대세는 기운 듯 싶다. 문재인 대통령도 법안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모양이다. 중재안대로 법안이 통과된다면 검찰은 수사권을 잃게 된다. 검찰청법 제정·시행 73년 만이다.
서울 서초동을 중심으로 전국 검찰청에서는 연일 반대 성명과 기자 브리핑이 이어지고 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성향도 따로 없다. 소리만 없을 뿐이지 통곡의 바다다. 이런 검찰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우리 검찰이 달라졌어요", "진작들 좀 잘 하지"라는 조롱섞인 비판도 나오지만 그만큼 절박함이 배어 나온다.
사태 초기만 해도 검찰의 반발은 김오수 검찰총장을 중심으로 한 수뇌부의 '낭만적 대처'였다. "직에 연연하지 않겠다". 지금까지 개혁 수술대에 올랐던 검찰을 구한 주문이었다. 그러나 그 주문은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나온 것이 전국평검사들의 검찰개혁안이다. 기소대배심제와 검찰총장 국회출석 정례화, 검찰총장 탄핵 법제화, 검찰 인사의 민주적 통제안 등이다. 기소편의주의를 포기하고 수장의 권력을 국회 통제 아래에 두겠다는 각오다. 사실상 다 내려 놓은 셈이다. 수뇌부가 "검수완박 하면 직을 던지겠다"는 과거의 착오를 답습할 때 검찰의 자정적 개혁 의지라는 싹이 평검사들 사이에서 피어난 것이다. 그러나 그 싹은 70여년만에 머리를 내밀자 마자 말라버리게 생겼다.
애초부터 여당과 국회의장은 검찰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던 듯 싶다. 검찰에게 '검수완박'에 대한 대안을 내놓으라고 끊임 없이 시그널을 보낸 박범계 법무부장관도, 대안을 마련해 국회의장을 찾아간 김 총장도 중재안의 존재는 알지 못했다. 결국, 검찰이 제시한 개혁안은 단 한글자도 반영되지 않았다.
'의장 중재안'은 뒤에 뒤집혔긴 했으나 여야가 합의하고 인수위가 수용했다는 것 외에는 실망스러웠다. 무엇보다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을 개정한다면서 그 대상인 국민의 재판청구권에 대한 배려가 아쉬웠다.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최소한으로 보장하기 위한 보완수사요구권에 대한 가이드라인조차 보이지 않았고, 이미 3년 전 사라진 '특수부'라는 용어가 버젓이 들어 앉았다. 그러면서 "검찰개혁법안(검수완박 법안)은 이번 임시국회 4월 중에 처리한다고" 한다. 이러니 '정치적 야합'이라는 말이 나온다.
'번갯불에 검찰 볶아먹기'식 졸속 법안이라는 비판을 받을 때마다 여당이 퍽 신박한 대안인 듯 내놓는 말이 '한국형FBI' 설치다. 일명 중대범죄수사청. 검찰이 가진 6대 중대범죄 수사를 맡을 기관이다. '의장 중재안'에도 검찰의 직접수사권 폐지 시한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한국형FBI의 도입은 이미 70여년 전에 있었다. 제정 검찰청법 29조는 "대검찰청에 서기국과 중앙수사국을 둔다"고 규정했다. 일제치하 무소불위였던 사법경찰권을 치안유지로만 제한하고 범죄수사지휘의 감독권을 검찰 산하 중앙수사국으로 넘긴다는 것이 요체였다. 그렇게 탄생한 중앙수사국의 후신이 다름 아닌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다.
그렇다면, 대검 중수부의 말로는 어떠했는가. 조직 자체가 정치 권력에 알아서 반응하며 걱실걱실 충성한 끝에, 결국 2014년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졌다. 중대범죄수사청을 두고는 또다른 대검 중수부가 될 것이란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경찰이라고 다를까.
법과 조직은 얼마든 다시 세우고 부술 수 있다. 하지만 똑같은 역사적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은 결국 그것을 운용하는 권력자들이 변질되고 부패하기 때문이다. 무소불위의 정치검사들을 낳고 기른 자들 역시 그들이다. 변질되고 부패하지 않을 것이라 담보할 수 없는 것이 권력이라면, 차라리 70여년 만에 어렵게 머리를 내민 진짜 검찰개혁의 싹을 키워봄은 어떠한가.
최기철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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