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고객의 세무조사를 성공적으로 끝냈다. 국세청 전산시스템이 조사 대상을 선정했다는데 세무사가 보기에도 담당 조사관이 보기에도 큰 문제가 없는 분이셨다. 결과도 예상했던대로였다. 하지만 조사를 처음 받는 고객은 조사기간동안 대출받는 것도 무섭다며 모든 사업활동을 중단시켰다. 밤에 잠을 못 자고 잠이 들어도 악몽을 꾼다고 했다. 아무리 조사 결과가 나빠도 가산세를 내면 그만이지 범죄자가 되는게 아니라 설명해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조사가 끝나고 나서야 편하게 잠들 수 있겠다고 마음을 놓는 모습이었다.
이렇듯 세무조사는 납세자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우선 세무조사는 공동체에 기여하며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자부심에 모욕을 주고 상처를 입힌다. 물론 세무조사를 받아야 마땅한 사람도 있지만, 복잡한 세법을 따라가다 지친 납세자 마음에서는 반발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다음으로 세무조사는 지난 수년간의 오류를 한 번에 바로잡고자 하기 때문에 갑작스레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의 세금이 부과된다. 졸지에 체납자가 돼 정상적인 경제 생활을 못하고 재산이 압류되기도 하고 출국이 제한되기도 한다. 나라의 근간이 되는 세금의 중요성이나 성실납세하는 납세자와 형평성을 생각하면 강한 제재도 일면 이해가 되지만, 오류가 축적되기 전에 한 번만 경고를 해줬더라면 이렇게까지 경제적 충격이 크지 않았을 거라고 말하는 분들이 대다수다.
지난 15일 프랑스 아를에 한국의 대표화백 이우환 선생님의 이름을 건 이우환미술관이 개관했다고 한다. 일본 나오시마와 한국 부산시립미술관 이우환 공간에 이어 3번째 이우환미술관이다. 심사숙고 끝에 깊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도시 아를을 선택해 수백년된 저택을 보수해 미술관으로 꾸몄는데, 일본 이우환 미술관을 설계할 때부터 이우환 선생님과 인연이 있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 선생님이 보수작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조각과 회화를 합해 40점의 작품을 공개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모 일간지에 따르면 선생님은 이렇게 좋은 소식을 한국 매체에 알리고 싶지 않아 하셨다. 그 이유는 최근 3개월에 걸쳐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았기 때문이라 한다. 사업을 하며 세금에 익숙한 사람도 세무조사를 무서워하는데, 평생 작업에만 매달린 선생님에게는 충격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람을 범죄자 취급했다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으셨다고 한다.
선생님은 2016년 위작 논란 때문에도 고생을 했다. 논란이 된 작품에 대해 선생님 입으로 직접 당신 작품임을 확신한다 하셨지만, 전문가들, 위조범들, 경찰·검찰은 위작이라고 판명했다. 2020년 최근에도 시사 프로그램이 또다시 이우환 선생님 위작 의혹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재점화돼 현재진행형이다. 진실은 당사자들만 알고 있다.
물론 공무에 헌신하는 세무조사관들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조사를 개시할 리는 없다. 국세기본법에 따라 납세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납세자의 성실함을 믿어주고,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만 조사하여 권한 남용이 없도록 한다. 특히 유명인을 조사할 때는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고, 당사자의 명예를 실추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철저히 준비해 확신을 가지고 신중하게 조사개시를 결정했을 것이다. 위작 논란 때에도 전문가나 경찰·검찰도 나름의 실증적 근거를 가지고 주장을 펼쳤을 것이다. 무조건 한 쪽이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제 선생님은 고국에 큰 회의를 느끼는 듯 하다. 관객들은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논란만 쳐다보고 범죄자 거짓말쟁이가 된 작가만 본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고자 하는데, 사회는 자꾸 작가에게 작품 외적인 것으로 입을 열라 한다. 멀리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거장이 외국에 소중한 문화유산을 남기게 됐다. 2015년에 대구광역시가 이우환 미술관을 추진하다가 무산된 적이 있었는데, 세계적인 건축가가 보수하고 이우환 선생님의 작품이 40점이 걸린 유서깊은 도시의 고즈넉한 미술관이 국내 도시 대구에 있었더라면 하는 상상을 해보면 못내 아쉽다.
작품은 작품일 뿐이다. 작품이 말하는 메시지를 잊고 거기에 매겨진 교환가치에 매몰되면 작품은 사라진다. 가짜냐 진짜냐, 그 값이 얼마냐, 돈을 얼마나 벌어 세금을 얼마나 냈느냐, 의혹만 남는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하기엔, 이렇게밖에 될 수 없을까 하는 기분이 남는다. 타국일지라도 기왕에 생긴 미술관이니, 우리나라가 낳은 거장을 알리는 데 좋은 역할을 했으면 한다. 또 하루빨리 작품 외적인 문제가 해결돼 선생님께서 고국으로 돌아오시기를 바라본다.
권민 미술전문 세무사(MK@mktax.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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