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뉴스토마토 김동현 기자] 호남은 민주당의 최대 지지 기반이다. 역대 대선 때마다 민주당 후보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던 안정적인 표밭이었다. 이번 설 명절에도 호남 민심은 여전히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흐름이 강했지만, 최근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면서 '윤석열 호남 득표 20%' 예측이 마냥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인식도 퍼지기 시작했다.
명절 연휴에 찾은 전북 익산시 중앙시장은 설을 맞아 장을 보기 위해 외출한 사람들로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얼어붙은 소비심리로 예년만 못한 분위기지만, 명절 차렛상과 선물을 준비하기 위한 시민들로 붐볐다. 2030세대가 즐겨 찾는 대학가는 코로나19 영업제한으로 비교적 한산했다. 이곳에서 만난 상인들과 시민들은 이재명 후보 지지를 표하는 가운데도 일부는 정권교체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전북 익산 중앙시장에 설 명절을 맞아 장을 보기 위해 방문한 시민들 모습. 사진/김동현 기자
청과물을 판매하는 50대 상인 김씨는 지역성을 강조하며 이재명 후보에 기꺼이 한 표를 던졌다. 그는 "여가 어딘디, 이재명이지"라며 "여그는 그동안 민주당을 지지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여"라고 단언했다. 60대 택시기사 권씨도 "누가 잘하고 못하고는 모르겄어도 경륜에는 이재명을 못 따라가지"라고 말했다.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등을 역임한 이 후보가 능력 면에서 앞설 것이라는 설명이다. 20대 취업준비생 조씨도 "성남시장, 경기도지사를 지낸 이 후보는 충분히 검증된 것 같다"며 "그동안 해온 일을 전국으로 확대한다고 생각하면 미래가 어느 후보보다 명확하다"고 강조했다.
아직 표심을 정하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뉴스를 통해 후보의 이름만 볼 뿐이지, 이들의 정책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지적도 많았다. 시장에서 잡화점을 운영 중인 70대 김씨는 "아직 한 달 이상이나 남았는디, 모르겄네요"라며 "얘기를 들어봐야 찍든 말든 할 텐데요"라고 말했다. 대선후보 TV토론회를 좀처럼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정책 별로 차이가 없어 갑갑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지난달 31일 양자토론을 합의해놓고도 자료 지참 여부를 놓고 이견 끝에 결국 무산됐다. 안철수 국민의당,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가세하는 다자 TV토론은 오는 3일 열릴 예정이다.
전북 익산 원광대 대학로 모습. 설 명절이지만 사람들의 모습을 찾기 힘들다. 사진/김동현 기자
갈피를 못 잡은 호남 유권자의 민심은 이번 대선의 최대 승부처로 떠오른 MZ세대(밀레니얼세대와 Z세대의 합성어)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들은 역대급 비호감 선거로 평가받는 대선에서 주요 후보의 악재에 더욱 주목했다. 30대 직장인 이씨는 호남이 그동안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기성세대에 국한된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는 설 명절 연휴 사이에 이 후보의 부인 김혜경씨가 과거 경기도 공무원에게 사적인 심부름을 시키는 등 의혹이 불거진 사실에 실망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씨는 "예전에는 무조건 민주당이었는데 확실히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윤석열도 괜찮지 않냐'는 분위기가 있다"며 "나도 이번에 이재명 후보 부인 논란을 보며 이 후보의 비호감도가 더 올라갔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호남에서 부는 변화에 한껏 고무된 표정이다. 이준석 대표는 득표율 20%를 목표로 호남 민심 공략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는 설 당일 광주 무등산을 등반했고, 설 이후에도 전남 남해안 다도해를 돌며 지역 민심을 파고들 예정이다. 이 대표는 무등산 등반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에 꼭 호남이 2022년 정치개혁의 선두에 서서 3월9일 개표방송에서 많은 국민을 놀라게 해주시고 '호남은 텃밭'이라는 타성에 젖은 민주당이 두려워하게 해주길(바란다)"고 적었다.
설을 맞아 고향을 찾아 익산역을 방문한 시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김동현 기자
광주에서 자영업을 하는 30대 최씨는 이번 정권에 대한 실망감이 크지만, 그래도 국민의힘은 아니지 않겠냐며 제3의 후보를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정부에 실망한 요인으로 부동산 정책과 코로나19 방역 대책에 따른 '고무줄' 영업시간 제한을 꼽았다. 최씨는 "예전에는 국민의힘을 뽑는다고 하면 배신자 소리를 들었지만, 요즘엔 민주당이 워낙 못하니 분위기가 바뀌었다"며 "나도 민주당에 실망을 너무 많이 했지만, 윤석열은 차마 못 찍겠다. 차라리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뽑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최근 호남 여론조사 추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뉴스토마토>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미디어토마토>와 함께 매주 실시하는 정례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후보는 호남에서 50% 후반에서 60% 초반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호남 지지율도 올라가는 양상이다. 지난해 12월 18~19일 실시된 19차 조사에서 이 후보는 광주·전라에서 61.9%의 지지를 얻었고, 윤 후보와 안 후보는 각각 13.8%와 5.3%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난달 22~23일 실시된 23차 조사에서는 이 후보 지지율은 61.8%로 큰 변동이 없었지만 윤 후보는 18.3%, 안 후보는 11.7%를 각각 기록하며 높은 상승세를 보였다. 70%에 미치지 못하는 이 후보의 지지율도 과거와는 달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호남=김동현 기자 esc@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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