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우연수 기자]
LG에너지솔루션(373220)이 '시총 단독 요건'으로 유가증권시장에 입성하는 최초 기업인 것으로 확인됐다. 시가총액 1조원 기준만 넘으면 영업익 적자라도 상장할 수 있는 특례 요건으로, 한국거래소가 유니콘 기업들의 국내 상장을 유치하기 위해 작년 3월 신설한 바 있다. LG엔솔은 상장과 동시에 코스피 시총 3위에 오르는 몸집을 자랑하는 만큼 시총 요건을 거뜬히 만족하는 것은 물론, 글로벌 배터리 점유율 2위 기업으로서 미래 성장성도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일각에서는 유가증권시장 특례 상장 제도가 유망 스타트업이나 유니콘 기업이 아닌 대기업 자회사들을 위한 특례 요건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도 취지가 무색하게도 LG엔솔은 한 때 코스피 시총 3위에 올랐던 LG화학의 분할 회사이며, 작년에도 카카오페이와 현대중공업이 시총 자기자본 요건 등으로 특례 상장했기 때문이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거래소 측에 시총 단독 요건으로 상장 심사 청구 의지를 밝혔다. 작년 6월 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할 때까지 LG엔솔은 적자상태였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에서 각각 마이너스(-) 6048억원, -4518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도 12월에 LG화학에서 분할된 이후 사업보고서에 한달치 실적만 찍힌 상태로 청구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현재보다 미래 성장성 강조 효과"
LG엔솔이 시총 단독 요건을 선택한 배경엔 성장성 기업이라는 '상징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LG엔솔은 매출액 1조4611억원, 자기자본 7조5654억원으로 기존에 있던 시총-자기자본 요건(각각 5000억원, 1500억원)과 시총-매출액 요건(각각 2000억원, 1000억원)도 충족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매출액이나 이익을 고려하지 않아도 높은 성장성만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상장했다는 이미지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며 "배터리 사업의 높은 성장성을 보여주는 데 그 요건이 부합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거래소에 따르면 매출이나 자기자본 등 수치가 있는 경우 상장 자격을 입증하기 수월하겠지만, 시총 요건만 맞추는 경우엔 향후 수익성이나 미래의 매출 규모 등 근거 자료를 더 꼼꼼히 제시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
앞서 손병두 거래소 이사장은 제작년 쿠팡의 미국 뉴욕증시 상장 이후 K-유니콘들이 국내 시장으로 발길을 돌리도록 상장제도를 개선한 바 있다. 적자기업이라도 시총이 1조원만 넘으면 코스피 상장이 가능하도록 시총 단독 요건을 신설했으며, 시가총액과 자기자본을 함께 보는 '시총 자기자본 요건'도 각각 5000억원과 1500억원으로 완화했다. 현재 유가증권시장 특례상장 요건에는 △매출 1000억+시총2000억 이상 △세전이익 50억+시총 2000억 이상 △시총 5000억+자기자본 1500억 이상 △시총 1조원 이상 등 4가지 요건이 있다.
잇따른 대기업 계열사 특례상장…유니콘 발굴 취지 '무색' 지적도
시총 단독 요건 상장 1호 기업의 탄생을 두고 성장성 있는 적자 기업들이 조속히 증시에 입성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됐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아직까진 대기업 자회사 상장에 치우져있단 지적도 나온다. 특례 상장 제도는 미래 성장성이 있는 스타트업과 유니콘 기업을 국내 증시에 유치하기 위함인데, LG엔솔은 이미 코스피 시총 3위에도 올랐던 대기업 LG화학의 분할 회사다.
지난해 특례 상장으로 유가증권 시장에 들어온 기업 4곳 중에도 대기업의 자회사가 절반에 달한다. 카카오를 모회사로 둔 카카오페이와 현대 계열사인 현대중공업이 시총(2000억원)과 매출액(1000억원)을 함께 보는 요건으로 증시에 입성했다. 특히 현대중공업은 현대중공업지주, 한국조선해양(중간지주회사), 한국미포조선(중형선위주 선박회사)과 별개로 또 상장을 진행한 점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중복 상장으로 과도하게 투자금을 유치하는 반면 주주 가치는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계열사가 아닌 피비파마와 에스디바이오센서도 시총 자기자본 요건으로 상장했지만, 이들의 공모가 대비 수익률은 각각 -53.0%, 6.2%에 그친다.
현대 계열 정유업체인 현대오일뱅크가 현재 적자 상태로 거래소 상장 심사를 받고 있으며, 작년 10월 SK이노베이션에서 분할 신설된 배터리 회사 SK온 역시 상장을 준비 중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특례 제도 덕분에 미래 성장성이 있는 적자기업들이 해외가 아닌 국내 증시에 상장할 수 있었단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유니콘 기업들까지 이 제도를 통해 더 많이 상장한다면 더 바람직한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우연수 기자 coincidenc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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