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태현 기자] "쿠데타 군은 목사님을 죽이고 손가락을 잘라 결혼 반지를 가져가고, 지갑까지 가져갔습니다. 진짜 테러리스트의 행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유학 중인 찬빅재씨(Salai Chan Bik Ceu·30세)는 지난 18일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 도중 한 달 전에 알려진 미얀마 군부의 만행을 떠올렸다. 찬빅재씨는 미얀마 소수민족인 '친족(Chin)'으로, 친족이 다수 거주하는 친주(Chin州)를 비롯한 미얀마 동향을 페이스북으로 전하고 있다. 1개월 전 군부가 내전 과정에서 친주 소도시 딴틀랑을 공격해 주민 집들이 불타자, 한 목사가 주민들과 함께 불을 끄다가 군부의 총에 맞아 숨졌다. 친족의 주요 종교는 기독교다.
찬빅재씨는 "이런 전쟁 때문에 1만명 정도 되던 주민이 떠나버려 현재는 딴틀랑에 거주 인원이 1명도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미얀마 인권단체인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쿠데타 이후 지난 23일 기준으로 군부에 의한 사망자는 1196명, 체포된 적 있는 인원은 9175명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7016명이 여전히 구금 중이다. 앞서 지난 2월1일 군부는 민간 정부를 뒤엎는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정부를 실질적으로 이끌던 아웅산 수지 여사를 가두고, 반발하는 시민들을 탄압해오고 있다.
수십년간 독재해오던 군부는 2015년 민간 정부가 들어설 때도 군통수권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총선에서 민간 정부 여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도적인 의석을 차지하고, 군부의 권력을 약화시키려하자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로 피해를 입는 사람이 늘어가고, 국내 저항과 국제사회 비판이 이어졌지만 군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지난 2월8일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군 최고사령관이 네피도에서 TV를 통해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그러다가 최근 들어와서는 군부라는 '벽'에 금이 가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에게 '한방' 얻어맞았다. 지난 16일 아세안은 26~28일 화상으로 열리는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군 총사령관을 제외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소속 국가끼리의 불간섭을 지켜오던 아세안에서는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이에 대해 군부는 불만을 표하면서도 정치범 수천명을 석방시켰다.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얀마 이슈에 아무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국제 사회 비판이 아세안에게 부담이 됐다"며 "이슬람이 다수인 의장국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가 미얀마 내 (이슬람 믿는) 로힝자족 탄압 이슈 관련해 오랫동안 비판한 것도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4월 임시정상회의에서 군부 지도자를 불러 폭력 중단 등 합의안을 만들어 냈으나, 군부가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아 아세안의 체면이 많이 손상됐다"고 덧붙였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미얀마 양곤의 인세인 교도소 앞에서 한 여성이 석방된 딸을 부둥켜 안고 눈물의 재회를 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미얀마 내부에서는 쿠데타 이후 내각에서 쫓겨난 민주화 세력이 꾸린 민족통합정부(NUG)가 지난달 7일부터 전쟁을 선포해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중이다. 정범래 '미얀마 민주주의 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주민들이 반 군부 무장투쟁 세력에게 군부 병력의 위치를 제보해 의미 있는 성과를 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수 민족인 버마족과 소수민족과의 연대도 소득이다. 비폭력 평화시위가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군부를 무너뜨리려면 무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퍼졌고, 그동안 미얀마에서 독립 투쟁하던 소수 민족의 '전쟁 노하우'를 빌리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소수민족에게 자치권이라는 반대급부를 제시하겠다고 약속하게 된다.
페이스북 뉴스 그룹 '미얀마투데이'를 운영하는 최진배 대표는 "민간인이 맨몸으로 국경으로 도망하다보니 군대를 스스로 조직하지 못하고, 무기 구하는 루트도 몰라 소수 민족에게 의존하게 됐다"며 "NUG가 발표한 자체 군사력이 3만명인데 쿠데타 세력은 대략 45만, 50만 대군이라고 발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소수 민족과 연대 없이는 지지부진한 게릴라가 이어져 민간인 피해가 늘 수 밖에 없다"며 "설사 소수 민족 없이 이길 수 있다하더라도 다시 소수 민족과 내전에 돌입할 위험도 있다"고 설명했다.
NUG는 소수민족의 자치권 약속 이외에도 화합을 위해 노력 중이다. NUG 대통령 권한대행부터가 친족이며, 인권부 장관의 자문으로 로힝자족이 지명됐다. 이양희 전 유엔 인권특별보고관은 최근 미얀마 관련 강연에서 "로힝자가 처음으로 미얀마 정부에서 역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군부가 쉽게 무너지리라 낙관할 수 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NUG가 군사나 물리력으로 군부를 이기기에는 쉽지 않다"며 "소수민족과 대타협 만들어낸다고 해도 실제로 국가 안에서 집행될 가능성도 높지 않다"고 진단했다.
최 대표도 "NUG 내에서도 소수민족과의 적극 연대와 버마 중심주의 몰두한 사람이 갈린다"며 "쿠데타 세력이 동남아에서 2번째로 강한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 저평가할수도 없다"고 말했다.
지난 3월14일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구조대원들이 시위 중 숨진 한 여성의 시신을 들것에 실어 옮기고 있다. 사진/AP=뉴시스
때문에 민주화 달성을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지원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미얀마 양곤 현지에 거주하며 미얀마 사태를 지켜봐 온 회사원 우쪼모씨(50세)는 지난 19일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한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가 미얀마를 돕는 것이 여러 사정으로 힘들다면 NUG를 정치적으로만 인정해주면 된다"고 말했다.
찬빅재씨 역시 "국제사회의 성명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쿠데타군을 이길 수 있는 무기 등 내전에 필요한 것을 지원해달라"고 촉구했다.
아울러 쿠데타와 코로나19, 악화된 경제에 지친 미얀마인들에게 인도적 원조가 필요하다는 주문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미얀마 경제 상황은 최악을 달리고 있다. 올해 미얀마의 경제성장률은 -17.9%로 예상되고 있는데다 물가는 폭등하고 식량난도 예상된다. 최 대표는 "9월말부터 미얀마 화폐가 평가절하돼 환율이 폭등하고 있다"며 "미얀마는 생필품을 전부 수입하기 때문에 품귀현상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세 불안정도 작용했거니와 군부가 경제를 전혀 신경 안쓰기 때문에 신뢰가 떨어지고, 외부에서는 무정부 상태라고 보는 것"이라며 "곡창 지대에서도 군부의 민주화 탄압이 이뤄지다보니 9~10월 추수기에 추수를 못하고 사람들이 다 도망간 상황. 이대로면 내년 초반에 기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군부를 통하지 않는 인도적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시민단체 '아디'의 김기남 변호사는 "미얀마 현지에서는 외국 정부가 군부와 협력해 제공하는 원조 물품을 받기 원하지 않는다"며 "군부를 통하지 않고 국경 통해 소수민족 지원하고, 필요한 곳에 지원하도록 하는 정책이 시민사회 요구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국제개발협력 감시 시민단체 '발전대안 피다'의 한재광 대표 역시 "쿠데타 후 미국은 정부가 주는 원조를 중단하고, 그 금액을 미얀마 사람을 직접적으로 돕는 NGO에게 지원하더라"며 "현지 주민에게 식량, 학교, 병원 의료약품은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국내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자는 주장도 있다. 최 대표는 "쿠데타 이후 주한 미얀마 대사관의 업무처리가 일절 되지 않고 있다"며 "대사관이 (반 군부) 주한 미얀마인들에 대해 '블랙리스트'를 만들기도 했고, 고국의 정세 불안정으로 인해 업무가 마비된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군부에 소속되지 않은 미얀마인들은 두려움 때문에 대사관을 못 가기도 하고, 겨우 가더라도 대사관이 일처리를 안해주거나 더딘 것"이라며 "한국 정부가 행정적인 지원 방안을 찾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 7월7일(현지시간) 미얀마 양곤의 짜욱더다에서 학생들이 반 군부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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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기획취재팀 최병호·신태현 기자 choibh@etomato.com htenglis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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