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표진수 기자] "경로당도 못가니까 매일 탑골공원에서 얘기나 하다가 들어가요"
지난 20일 '노인들의 홍대'라는 탑골공원에서는 여전히 많은 노인들을 볼 수 있었다. 관련 인프라를 갖추고 접근성이 좋은 탑골공원은 서울시에서 어르신 맞춤형 문화특화거리로 조성하기도 했다.
현재 탑골공원은 지난해 2월부터 무기한 폐쇄된 상태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에 따른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 조치에 서울지역 경로당, 복지관, 관공서 등 3700여 곳 중 2400여 곳이 문을 닫았다.
지난 20일 탑골공원 인근 벤치에서 노인들이 장기를 두고 있다. 사진/표진수기자
탑골공원이 폐쇄됐어도 여전히 무료 급식을 하고 있어 사람이 많이 몰렸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노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탑골공원에서부터 종로3가, 종묘광장공원까지 인도나 벤치 등 엉덩이를 붙일 수 있는 곳마다 '삼삼오오' 모였다. 어림잡아 수십명의 노인들이 거리를 떠돌고 있었다.
이들은 서로의 이름조차 모르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장기를 두고 이야기도 나누는데에는 아무 문제 없었다. 한 노인이 장기를 끝내고 일어나자 약속이라도 한 듯이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지나가던 노인은 자연스럽게 훈수를 두기도 했다.
매일 이곳을 찾아 장기를 둔다는 A씨(84세)는 성북동에서 거주한다고 말했다. A씨는 "나는 여기 매일 나와 장기 두고 시간 떼우다 들어간다"며 "(요즘에는) 경로당에도 못가, 갈 데가 없다. 그래도 여기 나오면 매일 사람은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탑골공원 한 택시승강장에서 노인들이 쉬고 있다. 사진/표진수기자
탑골공원 200m 인근에는 더위를 피해 그늘이 있는 택시승강장 또는 찬 바람이 나오는 지하철 계단 앞에서 모이는 노인들도 있었다. 노인들은 지하철 무임승차를 애용하기 때문에 실제 택시를 이용하는 노인은 볼 수 없었다.
택시승강장에 앉아 부채질을 하고 있는 노인 B씨(67세)는 "탑골공원에서 밥먹고 여기서 쉬고 있다"며 "경로당도 못가니까 여기서(택시승강장) 사람들이랑 이야기나 하다가 저녁때쯤엔 들어가야지"라고 말했다.
계속되는 코로나19 여파에 노인들은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었다.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올 2분기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 60~70세의 자살 생각 비율은 2020년 5월 4.71%였던 것이 올 6월에는 8.17%까지 상승하기도 했다.
노인들은 우울감을 해소하기 위해 일부러 사람이 많을 곳을 찾기도 했다. 동묘에서 만난 C씨(71세)는 양손에 봉투를 한가득 들고 나무그늘 벤치에 쉬고 있었다. C씨는 "집에만 있기 적적해 동묘를 자주 찾아온다. 여기는 중고 물품이 대부분이지만 매일 새로운 물건이 들어오고 저렴하고 볼 것도 많다"며 "그늘에 앉아 있으면 내 또래 말동무도 생겨 이야기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고 말했다.
실제 노년층의 휴식 활동에 대한 의존은 상당하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6월 발표한 2020년 노인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인의 여가문화 활동 중 52.7%가 휴식 활동을 선택하고 있었다. 보건복지부는 코로나19로 인한 제약이 영향을 준 것으로 해석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백신 1차 접종을 마치는 9월 말 10월 초에는 '위드(with) 코로나'로의 방역전략 전환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이다. 이는 9월 말 10월 초에는 다시 경로당 등 노인 시설을 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지난 20일 동묘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사기위해 삼삼오오 모여있는 노인들. 사진/표진수기자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