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승진 기자] 미국이 20년간 주둔했던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 방침을 밝힌 지 불과 4개월 만에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간을 점령하면서 미국 책임론이 거세지고 있다. 그 와중에 중국은 탈레반의 아프간 함락을 일대일로(중국이 주도하는 육·해상 실크로드) 정책을 부각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있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6일(이하 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아프간 정세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는데 우리는 아프간 인민의 염원과 선택을 존중한다"며 중국은 아프간의 평화와 재건을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탈레반이 아프간 수도 카불을 점령했다. 사진/뉴시스
미국 등 서방국가의 철수 행렬이 이어지고 있지만 아프간의 수도 카불 주재 중국 대사관은 철수 계획이 없는 상태다. 중국대사관은 같은 날 성명을 통해 “중국인과 중국 기업의 안전 보호를 아프간에 있는 여러 당사자들에게 요청했다, 지금까지 중국인 부상이나 인명 피해에 관한 어떠한 보고도 받지 못했다”며 아프칸 현지에 머무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중국은 아프간 철군을 결정한 미국이 무책임하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중국의 환구시보는 지난 16일 사설을 통해 “강대한 미국이 20년이란 시간을 들였음에도, 외부 원조가 없던 아프간 탈레반을 무너뜨리지 못했다”고 했다. 또 “이번 실패는 월남전 실패보다 더 분명하게 미국의 무력함을 보여줬다. 미국은 확실히 종이호랑이인 듯하다”고 비난했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자 중국에선 기다렸다는 듯 ‘일대일로’ 프로젝트 추진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중국과 아프간은 2016년 시진핑 국가주석의 역점 사업인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바 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중국은 아프간 개발에 기여할 수 있으며 앞서 제안한 일대일로를 추진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판광 상하이 사회과학원 전문가는 글로벌타임스에 “중국은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해 파키스탄, 타지키스탄 등 다른 국가들과 국경 통제를 위한 대테러 협력을 시작했다”며 “중국이 할 수 있는 것은 전후 복구에 참여하고 미래 발전을 위해 투자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간 중국은 신실크로드 구상의 전략적 요충지이지만 안보상 이유로 비켜 나 있던 아프간을 일대일로 사업의 주요 파트너로 끌어들이려 노력해 왔다. 지난달 28일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겸 외교부장은 탈레반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를 만나기도 했다. 중국이 아프간 재건에 역할을 약속하는 자리였다.
중국의 국제 안보 역할 부상론도 제기되고 있다. 이미 중국은 이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미국 주도가 아닌 중국 주도의 평화협상 개최를 제시한 바 있다. 이번 탈레반의 득세가 미국 주도의 대테러정책이 실패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중국이 이 틈을 파고들 것으로 본 것이다.
지난달 28일 중국 톈진에서 왕이(王毅)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아프가니스탄 반군 무장조직 탈레반 부지도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와 만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승진 기자 chogiz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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