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유라 기자] 삼성전자의 반도체 발전 전략이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났다. 평택고덕 산업단지(산단) 반도체 공장 증설에 맞춰 산단 내 공공폐수처리시설을 설치하려는 계획이 관련법도 외면한 정부의 내부 지침에 따라 틀어졌기 때문이다. 당초 정부는 국비를 지원해 산단 기반시설을 설치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막상 예산안에는 설치비를 한푼도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업계에서는 국가기간산업인 반도체 분야를 적극 지원 육성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3일 본지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고덕국제화계획지구 일반산업단지 공공폐수처리시설(이하 폐수처리장) 2단계 사업'에 국비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앞서 2012년 경기도·평택시는 삼성전자와 고덕산단 입주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전자는 고덕산단에 100조원 이상을 투자, 차세대 반도체 생산시설을 비롯, 의료기기, 신수종사업(새로 육성할 사업을 뜻함)을 조성하고 3만개 이상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계획이었다. 2017년부터 가동한 1라인(P1)은 메모리 반도체를 담당하고 있고 2라인(P2)도 지난해 8월부터 가동되고 있다. 지난해 3라인(P3)이 착공한 데 이어 앞으로 4~6라인 건설도 계획 중이다.
◇국비지원 약속해놓고 '모르쇠'
고덕산단은 반도체 공장 증설에 맞춰 폐수처리장을 추가로 설치해야 한다. 폐수처리장은 산단내 발생하는 오·폐수를 정화하는 시설이다. 고덕산단 폐수처리장은 단일 시설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인 하루 처리용량 34만톤으로 총 4단계 사업으로 진행된다. 1단계(10만2000톤/일)는 지난 2018년 12월 준공 후 가동 중에 있다. 2단계는 처리 능력이 하루 6만7500톤이며 843억원의 사업비가 들어간다.
정부는 1단계 사업 추진 당시 산업입지정책심의회를 열고 '주한미군기지이전에 따른 평택시 등의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일명 평택법)'에 의거, 기반시설인 폐수처리장, 진입도로, 용수공급 등에 5614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 가운데 폐수처리장 설치비(3595억원)의 70%인 2516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평택 특별법 제29조 2항에는 '평택지역 내에서 지방산업단지를 조성할 시 기반시설 비용을 국가가 전액 보조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 전경. 사진/삼성전자
◇특별법 놔두고 내부지침 따르는 정부
이에 따라 도와 시는 원활한 사업추진을 위해 지난해 1분기 중앙정부에 국비를 요청했지만 전액 반영되지 않았다. 대기업이 산단에 입주하도록 적극적으로 유치하면서 정작 산단 개발에는 아무런 지원이 없는 것이다.
정부는 산단에 단일기업(대기업)이 입주한 경우에는 국비를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환경부는 2017년 이후 '산단내 단일기업 입주 비중이 75% 이상일 경우 지원대상에서 제외(산업입지 개발에 관한 통합지침, 제41조)'한다는 내부지침을 앞세워 예산을 반영하지 않았다. 또 '공공폐수처리시설 방류수 수질기준 해당 항목 중 최고 배출오염부하량이 처리시설 총 유입부하량의 80% 이상일 경우에는 공공폐수처리시설 신·증설사업 지원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며 지원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그러나 도와 시는 특별법이 지침보다 우선하는 만큼 '평택 특별법'을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심지어 1단계 국비지원 당시에도 '단일 사업장이 3/4 이상 면적을 차지하는 경우 제외할 수 있다'는 임의적 규정이 있었다. 당시 국토부는 산업입지정책심의회를 열고 관계부처 논의 끝에 국비를 지원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처럼 정부는 이미 국비지원 전례가 있었음에도 사업비를 예산안에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앞으로 남은 3, 4단계 사업도 지원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셈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고덕산단 공공폐수처리장의 폐수배출량의 90% 이상을 차지한다"며 "환경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특정기업의 폐수배출 비중이 높으면 폐수처리장 설치 비용을 기업이 부담하도록 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삼성전자의 아산탕정 사업장 폐수처리장 비용도 국고로 지원하지 않았고, 1단계는 당시 평택 미군기지 이전 이슈가 있어서 예외적으로 지원했던 것"이라며 "그 이후 국회에서 산단에 특정대기업이 공공폐수 부하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국고지원을 하는게 맞지 않다는 지적이 있어서 환경부의 내부 지침을 적용해 지원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이제 폐수처리장 전체 사업비를 지원한다고 한적이 없다고 발을 뺐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난해 예산심의를 통해 2단계 사업은 예산안에 반영 안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며 "애초 모든 사업에 지원하겠다고 한적 없고 단계별로 검토 후 결정하겠다고 했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관련 사안에 대해 "밝힐 입장이 없다"고 전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새해 첫 경영행보로 평택 3공장 건설현장을 찾아 진행 상황을 점검하는 있다. 사진/삼성전자
◇반도체 초격차 달성 '빨간불'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는 2022년 상반기까지 2단계 시설을 완공한다는 계획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도와 시가 지원여부를 파악하느라 사업 일정이 다소 지연된 것으로 전해졌다. 어쩔 수 없이 삼성전자는 2단계 사업비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 반도체 공장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폐수처리장 사업 일정을 계속해서 지체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작년 한해 동안 국비 반영을 위해 수차례 기재부와 환경부를 방문한 도와 시의 노력도 수포로 돌아갔다.
고덕산단은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생산단지이며 삼성전자의 반도체 초격차 목표를 달성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P2에 10조원을 추가로 들여 극자외선(EUV) 기반 최첨단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생산라인을 구축한다고도 했다. 새해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올해 첫 경영행보로 평택 사업장을 찾아 반도체 사업을 직접 챙겼을 정도다.
그러나 정부지원이 가로막히며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이로 인해 삼성전자가 반도체 슈퍼싸이클을 대비하는데 발목이 잡힐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기반시설인 폐수처리장이 지어지지 않으면 향후 반도체 생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반도체 공장 건설에 따른 일자리 창출, 경제 파급효과를 고려한다면 국비지원이 필요한다고 본다"고 했다.
최유라 기자 cyoora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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