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댓글부대, 통제사회의 첨병
2020-10-26 07:00:00 2020-10-26 07:00:00
서명수 슈퍼차이나 대표
"권력은 흔히 여론에 좌우되고, 여론은 선전·선동에 좌우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서양철학사>에서 권력의 속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정치의 핵심인데, 권력을 장악하려면 여론을 장악해야 하고 여론은 선전과 선동을 통해 만드는 것이라는 의미다.
 
'전가의 보도'처럼 매주 발표되는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와 각 정당에 대한 지지율 여론조사는 권력 운영의 핵심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여론이라는 것이 선전과 선동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다. 이미 1945년 서양의 철학자가 지적한 여론조작의 현실을, 우리는 외면하거나 선전 또는 선동을 통해 형성되고 조작된 여론을 다수의 의견이라고 인식해 철저히 숭배하는 모순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권력을 장악한 세력은 다양한 매체와 수단을 통해 선전과 선동에 나서 우호적 여론을 장악하려고 애쓴다.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영화를 통해 여론을 장악했다. 영화는 이후 시대를 거치며 선전·선동 도구에서 대중예술로 거듭나게 됐지만 여전히 지금도 유효한 선전·선동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서구나 우리나라와 같은 민주사회에서의 선전·선동은 더욱 교묘하다. 사회주의 독재국가와 달리 '시민 다수의 의견'이라는 포장을 통해 여론을 제시하고 여론을 조작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금방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다. 무엇보다 인터넷과 모바일 세상에선 과거보다 오히려 더 다양한 방식으로 여론조작이 가능해졌다. 매크로를 이용한 드루킹 사건이 이와 같은 여론조작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전쟁과도 같은 댓글 폭탄 역시 여론을 좌우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이라며 상대에 대한 비방 댓글과 문자 폭탄을 두둔했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인터넷 뉴스포털은 사실 일반 여론이라기보다는 특정 세력들이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댓글 전쟁터가 된 지 오래다. 댓글 공격을 '민주주의의 양념'이라고 웃어넘기는 상황은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한다.

통제사회 중국의 여론 조작도 상상을 초월한다. 중국은 얼굴인식 감시카메라를 전면 도입, 대륙을 하나의 감시망 속에 집어넣었다. 전자식 공민증을 만들거나 휴대폰을 새로 개통하려면 누구나 얼굴을 등록해야 한다. 사소한 무단횡단이나 경미한 사회질서 위반은 물론 개인의 모든 사회생활이 점수로 환산되는 '사회신용 제도'도 시행 중이다. 점수가 누적돼 일정 기준 이하로 내려가면 비행기나 기차도 타지 못한다. 인터넷 방화벽인 '만리방화'는 철통같이 인터넷을 차단하고, 400만명에 이르는 공안과 무장경찰은 오프라인을 감시한다. 중국은 더욱 촘촘해진 빅브라더의 세상이 되고 있다.

중국의 온라인 여론을 좌우하는 건 소위 말하는 '우마오당'(五毛黨)이라고 불리는 인터넷 평론가 부대다. 이들은 공산당과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는 인터넷 댓글을 하나 작성할 때마다 5마오(0.5위안)씩 받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실제 이들은 공산당 중앙선전부가 관장하며 지방에서도 지방선전부가 있다. 2005년부터 실체가 드러난 우마오당은 현재 규모가 1000만명에 이를 정도로 막강하다.

이들은 과거 중국 내 매체에만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눌렀다. 국내 여론만 관리했으나 최근에는 해외 사이트 등에도 적극적으로 현지어로 댓글을 달고 있다. 물가 상승으로 인해 댓글 아르바이트 비용도 5마오에서 7마오로 올랐다. 그래서 이젠 '치마오당'으로 호칭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23일 오후 1시47분에 게재된 시진핑 주석의 항미원조 70주년 기념식 연설기사의 경우 1시간도 지나지 않아 5000개의 '좋아요'가 달렸다. 21일 시 주석의 '쓰촨성 혁명상이군인 휴양소' 방문 기사엔 무려 1만여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모두 시 주석을 중국 인민의 영웅이라고 칭송하는 내용이었다.

우마오당의 댓글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이른바 '좌표'가 찍히면 사정없이 댓글을 단다. 얼마 전 우리나라 연예인 이효리가 한 '마오'발언에 대한 중국 네티즌들의 비난공세도 우마오당의 좌표찍기를 의심케 할 정도다. 우리나라에서 우마오당과 비슷한 화력의 댓글 전쟁을 펼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조직이 있다면 소위 '문파'정도가 될 것 같다.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diderot@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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