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배 없는 금감원…조직 쪼개기 속수무책
2025-09-17 15:34:51 2025-09-17 17:59:42
 
[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금융감독원이 조직개편안에 강력 반발하고 있음에도 정부와 여당의 드라이브에 속수무책으로 밀리고 있습니다. 금감원장마저 정부 방침을 따라야 한다고 돌아섰고, 금감원 노조를 후방 지원할 상위 노조도 없는 상황입니다. 금융감독위원회로 간판을 바꿔 달며 실질적인 권한과 조직을 키우고 있는 금융위원회와는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이찬진 금감원장, 나흘 새 말 바꾸기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찬진 금감원장이 금융당국 조직개편 관련 정부 방침을 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내면서 금감원 내부에서는 불만과 반발 기류가 상당합니다. 조직개편안은 금감원을 분리해 금융소비자원(금소원)을 신설하고, 금감원과 금소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내부에서는 "금융감독 독립성이 훼손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정부 결정을 그대로 따르라는 말이냐", "윗선 눈치보기에만 급급한 행태" 등의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원장은 전날 임원회의에서 "감독체계 개편은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수개월 논의와 당정대 협의를 거쳐 공식적인 정부 조직개편안으로 최종 확정·발표된 사안"이라며 "금감원은 공적 기관으로서 정부 결정을 충실히 집행할 책무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직 수장마저 조직개편안을 수용하겠다고 밝힌 부분은 금감원 직원들로서는 뼈아픈 대목입니다. 이 원장은 나흘 전인 지난 12일 노조와 면담에서 "조직 분리 비효율성, 공공기관 지정에 따른 독립성 및 중립성 약화 우려에 대해 엄중하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금감원 노조는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 같은 강성 노조의 후방 지원을 기대하기도 힘듭니다. 금감원 노조는 지난 2022년 민주노총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에서 탈퇴했었습니다. 금융사를 감독·검사해야 하는 입장에서 같은 상급 단체에 소속된 금융사 노조와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문제가 빈번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노란봉투법(노조법 개정), 4.5일제 도입 등 친노조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에서 상위 노조의 존재는 든든한 뒷배가 될 수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표심이 달린 금융권 노조의 요구를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현 정부 출범 이후 사무금융노조의 반발을 수용해 MG손해보험 정리 방향이 청산에서 매각 재추진으로 급선회했고, 통상임금 확대 요구에 기업은행 노사 갈등이 봉합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한국노총 산하 금융노조는 지난 대통령 선거 때 '금융정책과 감독 기능 간 상호 견제를 위한 제도 개선' 등을 담은 정책 요구 사항을 민주당에 전달했지만, 현재 조직개편에 대해 별다른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습니다. 금감원 노조는 국민의힘 등 야당 의원들에 조직개편 우려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지만 파급력이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대통령 친분이 크다는 금감원 수장마저도 등을 돌렸다"며 "금융감독 독립성 훼손으로 금융소비자 피해가 우려되고 금융사 부담이 커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치 역학적인 구도에서 누구도 금감원 주장을 들어주는 곳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으로 출근하고 있는 모습. 현재 금감원 직원들은 조직개편을 반대하는 의미로 출근길 집회를 열고, 기수별로 근조기를 금감원 로비에 가져다 놓았다. (사진=뉴시스)
 
금감위로 부활 노리는 금융위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정부 조직 개편에 강력 드라이브를 걸고 있습니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지난 15일 금감위 신설과 금감원·금소원 분리 등을 담은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금융위설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금융위는 국내 금융정책 기능을 재정경제부로 넘기고 금융감독위원회로 재편돼 감독정책에 집중하게 됩니다. 금감위 산하기관으로 금감원과 금소원을 두고, 금감원 내 금융소비자보호처는 금소원으로 분리·격상하고 금감원과 함께 공공기관으로 지정됩니다. 
 
금융당국 조직개편이 금융감독 기능 강화를 명분으로 하고 있지만, 금감원 쪼개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금융감독정책 컨트롤타워인 금감위를 신설하지만, 금융위에서 간판만 바꿔 다는 수준이라는 평가도 나옵니다. 금융위 입장에서는 금융정책 부문을 재정경제부(신설)로 떼어내는 것이 아플 수 있지만, 금감위로 탈바꿈한 조직을 키우는 계기를 살릴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개정안에 따르면 지금까지 금감원장 전결로 이뤄지던 은행·보험사 최고경영자(CEO) 등 임원 대상의 '문책 경고' 중징계가 금감위 소관으로 넘어갑니다. 일반 직원에 대한 '면직' 요구권 역시 금감원장에서 금감위로 이관됩니다. 
 
금감원·금소원은 금감위로부터 정관 변경, 예산, 결산 승인을 모두 통제받아야 합니다. 그간 국내 정책을 담당하는 인원은 재경부 소속으로 옮기고 50명 안팎으로만 금감위에 남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는데요. 금감위가 금감원장을 겸임하지 않기로 했고, 금감위 권한 확대를 이유로 금감위 인원을 100명 이상으로 늘리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특히 금감원·금소원이 금감위에게 정관 변경, 예산, 결산 승인 통제를 받는 부분은 과거 논란이 됐던 '관치금융'으로 이어질 우려가 큽니다. 감독 업무의 경우 공공기관 지정에 따라 정부로부터 예산과 인사 등을 통제받을 경우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업무 수행이 어려워질 것이란 걱정이 큰 상황입니다. 
 
구민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책과 감독을 분리했던 근본 취지인 관치금융과 규제 포획 문제를 줄이고 감독의 독립성을 지키려던 노력과 상충된다"라며 "정책 목표가 앞서면 과거 저축은행 사태에서 봤듯이 감독 실패가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금융감독원 노동조합 조합원들과 직원들이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로비에서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반대하는 손피켓을 들고 서 있다. 정부·여당이 전날 금감원 내 금융소비자보호처를 분리해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을 신설하고, 금감원과 금소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겠다고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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