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한님 기자] "쿠팡이츠에서 배달하려고 보니까 시간이 너무 타이트하게 잡혔다. 솔직히 위험하긴 하지만 차가 너무 막히는 러시아워 시간대에 어쩔 수 없이 빨리 가려고 차 간 주행을 해야 한다. 차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사고가 났다."
쿠팡이츠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라이더로 활동했다는 김영빈 씨는 쿠팡이츠 라이더로 활동하며 겪은 위험에 대해 설명했다. 쿠팡이츠 앱에서 설정한 배달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그 시간을 맞추려고 하다 보니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김 씨는 "사고가 나서 보고했더니 쿠팡 측에서 '배달은 완료했냐? 음식은 괜찮냐?'고 물어보더라"며 "음식값은 물어주면 되는 건데, 사람 안위가 아니라 음식 안위를 먼저 물어보는 게 너무 안 좋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최소한 노동자가 음식보다는 가치있게 대우받았으면 좋겠다"며 울분을 토했다.
쿠팡이츠 라이더 김영빈 씨가 16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쿠팡 라이더들은 과도한 배달시간제한으로 사고 위험에 노출돼있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배달 라이더들로 구성된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은 16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쿠팡을 향해 라이더들의 안전과 보건에 신경 써 노동 환경을 개선할 것을 촉구했다.
라이더유니온은 쿠팡이츠가 배달 완료 시간을 지나치게 짧게 설정한다고 주장했다. 쿠팡이츠 일을 하고 있다고 밝힌 박정훈 라이더 유니온 위원장은 "약 10년 전 피자 30분 배달제로 배달 노동자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30분도 짧다는 지적이 나왔는데 지금 쿠팡이 걸고 있는 시간제한은 이보다 더한 수준"이라며 "쿠팡이츠에서는 아파트 호수를 찾아 올라가는 시간이나 지하상가에서 식당을 찾는 시간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비게이션에 13분으로 안내된 거리(왼쪽 사진)의 배달 예상 시간을 9분으로 설정한 쿠팡이츠 앱. 해당 라이더는 지난 주말 오후 4시 41분에 이 사진을 촬영했다고 설명했다. 사진/라이더유니온 제공
이날 라이더유니온은 내비게이션 예상시간이 13분인 거리의 배달 예상 시간을 쿠팡이츠 앱이 9분으로 설정한 화면을 보여줬다. 박 위원장은 "쿠팡이츠의 배달 예상 시간이 내비게이션에 비해 빠듯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라이더유니온은 이런 배달 예상 시간 때문에 평점이 깎이고 일자리를 잃을까 봐 두렵다고 했다. 쿠팡이 라이더 평가에서 '약속 시간 내 도착률'을 평가 항목에서 제외했지만, 배달 예상 시간이 계속 노출되는 한 배달 평점에 영향을 그대로 미친다는 것이다. 박 위원장은 "배달을 수락하지 않거나 고객 평가가 떨어지면 배송 사업자로서 계약이 해지될 수도 있고, 앱 접속이 막힐 수도 있다"며 "알고리즘 시스템이 우리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전혀 알지 못해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라이더유니온은 배달에서 생긴 문제를 모두 라이더에게 전가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라이더유니온이 공개한 배송 대행 계약서에는 '배송사업자는 배송업무 수행 중 인적 또는 물적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합리적인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사고 발생 시 배송사업자는 본인과 타인의 인적, 물적 피해 및 기타 사고와 관련된 모든 분쟁을 본인의 책임과 비용으로 해결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박 위원장은 "적어도 일을 하다가 다치면 산재처리는 되게 만들어야 하는데 음식값은 물론 치료비까지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며 "최소한 일을 하다 다쳤을 때 치료비는 회사와 라이더가 같이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줬으면 한다"고 했다.
쿠팡이츠 라이더인 김 모 씨는 "업장에서 포장 부실로 터진 음식도 저희 책임으로 해서 음식값을 부담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며 "이런 부분도 쿠팡 쪽에서 중재를 해줘야 하는데 무조건 라이더 책임으로 문제 삼는 것도 사실 갑질이자 횡포라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라이더유니온의 구교현 팀장은 "쿠팡 라이더 등록이 2만명이 넘은 상황에서 치타 배달 등으로 속도 경쟁을 하면서 사업 확장 의사를 밝히고 있다"며 "지금 제기된 문제를 잘 해결하지 않으면 쿠팡 라이더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큰 비용을 치르는 상황이 초래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자회견 후 라이더유니온은 쿠팡에 면담 요청서를 전달했다. 박 위원장은 쿠팡 측에 "카카오톡 플러스친구와 콜센터를 통해서 배달원과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데, 사고가 나면 여기서 어떻게 응대하는지 아시냐"고 물었다. 면담 요청서를 받은 김종일 쿠팡 서비스 정책 시니어디렉터는 "여기서 대답하기는 어렵다"며 "내부에서 논의 후 다음 주까지 답을 주겠다"고 했다.
배한님 기자 bh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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