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채권이지만 주식으로 전환 가능하거나 주식을 싸게 살 수 있는 권리가 붙어 있은 메자닌 채권이 공모시장에 나오고 있다. 고액 자산가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투자기회가 일반인들에게도 열린 것이다.
메자닌 채권이란 주식과 채권의 성격을 함께 지닌 채권을 말한다. 채권으로 발행하지만 투자자(채권자)가 원할 경우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전환사채(CB)와, 채권에 미리 약속한 가격에 주식을 새로 찍어 살 수 있는 권리가 사은품처럼 붙어 있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 채권을 발행한 회사가 아닌 다른 회사의 증권으로 교환할 수 있는 교환사채(EB) 등이 이에 해당한다.
메자닌 채권은 이자를 주는 채권에 주식도 가질 수 있어 일반 회사채보다 발행금리가 낮게 책정된다. 이러면 기업은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투자자가 채권을 주식으로 바꿀 경우 부채가 자본금으로 전환돼 재무구조가 개선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투자자들은 투자자대로 채권 원리금을 안전마진삼아 주가가 오르면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매력에 빠졌다.
이같은 이유로 지난 수년간 사모펀드 시장에서는 코스닥 기업과 논의해 BW와 CB를 발행·인수하는 투자가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사모펀드가 규제를 받으면서 공모시장으로 옮겨오는 경우가 하나둘 늘고 있다. 올해 들어 서울리거(200억원), 대유에이피(250억원), 트루윈(200억원), 팬스타엔터프라이즈(100억원) 등이 BW를 공모 발행했다.
메자닌 채권은 발행회사의 채무불이행 리스크만 피하면 무조건 이익이 나는 투자처이지만, 재무구조가 불안한 기업들이 CB와 BW를 발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본적인 채무상환 능력이 있는지, 업황이 나아질 수 있는지 등을 면밀히 살펴보고 투자해야 한다.
이중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메자닌 공모 두 건이 이달에 청약을 받는다. 수익성이 좋을 것으로 예상돼 높은 청약경쟁률이 예상된다.
50% 이상 차익 기대되는 현대로템CB
현대로템은 2400원 규모의 CB를 발행하는 공모청약을 진행 중이다. 9일과 10일 이틀 동안 공모청약을 받는다.
단, 구주주 공모 방식이다. 5월15일 현재 주주명부에 올라 있는 주주만 청약이 가능하다. 여기에서 미달분이 나오면 일반인에게 추가 청약을 받을 예정이지만 높은 경쟁률이 예상돼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채권을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조건인 전환가격이 현재 현대로템 주가의 60% 수준에 불과해 주주들이 청약에 적극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로템은 이미 상당한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해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다. 이중에서 다음주 16일에 만기가 돌아오는 1000억원 규모 채권도 있다. 이번에 조달하는 자금 일부도 이 채권을 상환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현대로템30’으로 명명될 이번 채권의 만기는 2023년 6월17일, 3년물이다. 신용등급은 기존과 동일한 BBB+이고, 발행금리는 표면이율 연 1.0%, 만기수익률 연 3.7%이다. 총 수익률은 연 3.7%이지만 3개월마다 연 1.0% 이자만 주다가 채권 만기 때 나머지 이자와 원금을 준다는 의미다. 기존에 발행한 회사채 금리가 2%대 중반에서 4% 초반이었음을 감안하면 괜찮은 조건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만기 때까지 보유하며 이자를 받기보다 빨리 주식으로 전환하고 싶을 것이다. 이들에게 제일 중요한 주식 전환가격은 9750원으로 정해졌다, 8일 현재 1만5650원인 현대로템 주식을 9750원에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당장 이 가격으로 주식을 받을 경우 60%의 차익을 낼 수 있다. 당연히 청약경쟁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채권을 받자마자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고 2020년 7월17일부터 2023년 5월17일 사이에 신청 가능하다. 채권이 입고된 증권사에 주식 전환을 신청하면 보유한 채권 금액만큼 주식을 교부할 것이다.
현대로템이 발행하는 CB는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인데도 기존에 발행했던 회사채들보다 발행금리가 떨어지지 않는다. 사진은 현대로템이 수주했던 대만 철도청 전동차 조감도. <사진/뉴시스>
이 정도면 땅 짚고 헤엄치기 같아 보이는데 변수가 있다. 주식으로 전환하기까지 남은 시간과 ‘병목현상’이다. 주식 전환 신청은 채권 발행 후 한 달이 지나야 가능하다. 지금의 주가와 전환가격 차이를 봤을 때 어차피 주식으로 전환될 채권이라고 본다면 주가는 하락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기존 주주들도 현재 갖고 있는 주식을 매도하고 싶은 욕구가 커질 것이다. 큰 폭으로 할인해 유상증자를 진행한 기업의 주가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결국 차익이 지금보다는 줄어들 수 있다.
CB 투자자가 주식 전환을 신청했을 때 곧바로 주식으로 입고되는 게 아니라는 점도 걸린다. 증권사들은 주식전환 업무처리를 몰아서 한다. 주식전환을 신청한 후 실제 주식으로 받는 사이에 주가가 하락하면 예상했던 이익을 온전히 얻지 못할 수도 있다.
또한 이 채권엔 풋옵션은 없고 콜옵션만 있다. 풋옵션은 채권 만기 전 여러 번에 걸쳐 미리 정한 날짜에 투자자가 채권 조기상환을 신청할 수 있는 권리고, 콜옵션은 반대로 발행회사가 채권을 조기에 회수할 수 있는 권리다. 현대로템30 채권은 발행일부터 1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만기 1개월 전까지 회사가 조기상환청구권을 행사해 이 사채의 미상환 잔액을 전액 상환할 수 있다.
회사가 콜옵션을 행사하려면 콜옵션 행사기간 개시 이후 연속 15거래일간 보통주 종가가 전환가액의 140%를 초과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미 60%를 넘는 상황이라 돈만 생기면 언제든 채권을 갚아 주식청구권을 없앨 수 있다. 물론 재무 상황이 열악한 지금으로서는 현대로템도 투자자들이 채권을 주식으로 바꿔 부채가 자본금으로 변하기를 원할 것이다.
한진칼BW, ‘지분경쟁’ 워런트 시세 급등 기대
사실 현대로템 CB보다 더 뜨거울 곳은 한진칼 BW 공모다.
한진칼은 BW를 발행하는 형식으로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일정 단축을 위해 주주 배정 청약은 건너뛰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모청약으로 곧바로 간다.
한진칼의 BW 발행이 주목받는 것은 경영권 지분 경쟁으로 인해 워런트 시세가 급등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사진/뉴시스>
BW는 채권(Bond)과 신주인수권(Warrant)이 붙어 있는 상품이다. 더구나 분리형 BW라서 채권은 채권대로 이자를 나오고, 워런트로는 워런트대로 따로 행사해 주식을 인수할 수 있다. 공모청약이 끝나면 BW는 채권(B)과 워런트(W)로 분리돼 각각 채권시장과 신주인수권 시장에 상장돼 거래된다.
워런트 1개당 주식 1주를 새로 발행해 살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다(신주인수권). 또 CB는 채권을 주식으로 바꾸는 것이지만 BW에선 워런트를 행사해도 채권은 그대로 남는다.
이번 BW의 채권이율은 표면이율 2.0%, 만기수익률 3.75%다. 현대로템보다 금리가 더 높다. 채권 만기일은 2023년 7월3일이지만 한진칼 BW엔 풋옵션이 부여돼 2년이 지난 2022년 7월3일부터는 매 3개월마다 채권 조기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 조기상환을 신청해도 연 3.75% 이율이 적용된다.
하지만 대다수 투자자들의 관심은 채권이자나 조기상환보다는 워런트 행사에 있을 것이다. 이번 공모가 크게 주목받고 있는 이유가 경영권 분쟁 중에 주식 지분을 늘릴 수 있는 워런트가 발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진칼이 BW 발행으로 조달하는 자금은 3000억원이다. 채무상환에 1000억원, 대한항공 주식 취득에 2000억원을 쓸 예정이다. 신주인수권 행사가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투자설명서에 예시한 가격으로 산정할 경우 331만주 정도를 더 발행할 수 있다. 약 5.3%의 지분이다.
현재 한진칼의 경영권을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조원태 회장 측과 KCGI연합은 모두 이 워런트를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공모청약에도 큰 돈을 넣을 것으로 보이고 나중에 워런트가 상장된 후에도 적극 매수하려 들 것이다. 이번 BW 발행으로 희석되는 지분율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 영향으로 이번 한진칼 워런트는 실제 이론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거래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워런트 확보를 통한 지분 경쟁이 심화된다면 워런트 가격은 과도하게 높이 오르고 반대로 채권은 헐값에 거래될 가능성도 있다. BW가 채권과 워런트로 나뉘어 상장된 후 시장에서 워런트를 더 확보하기 위해, 지분과는 상관없는 채권을 매도해 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분리형 워런트와 채권이 상장된 후에는 워런트 가격은 이론가보다 높이 오르고 채권은 액면가 이하에서 시세가 형성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때 채권을 싼값에 매수하면 채권투자 수익률을 높일 수 있고, 혹시 나중에 워런트를 행사해 주식을 인수하는 일이 생길 경우 할인 매수한 채권을 활용해 전체 수익률을 높일 수도 있다. 이 부분은 다음 기사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워런트는 채권 만기 한 달 전까지 신주인수권을 행사하거나 아니면 신주인수권 매매시장에서 매도해야 한다. 채권 만기 때까지 그냥 갖고 있으면 자동으로 사라진다.
증권사에 워런트 행사 의사를 밝히면 보유한 워런트 수만큼 새로 주식을 발행해서 받게 된다. 이때 처음 약속된 행사가격을 지불하면 된다. 증권사에서는 매달 15일과 말일쯤 워런트 행사 신청 건을 모아서 업무를 처리하며 그로부터 다시 며칠 후에 계좌에 주식이 입고된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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