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기종 기자] 의료기기 사용을 놓고 수년째 마찰을 빚어온 한·양방 의료계가 한의사 전문의약품 사용을 놓고 또 한 번 격돌했다. 검찰의 관련 사건 판단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며 갈등이 재점화되는 분위기다.
16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전문의약품인 '리도카인' 성분 국소마취제의 한의사 사용 여부를 놓고 의사들과 한의사들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지난 5월 의료기기 사용을 놓고 한 차례 격돌한 지 3개월여 만에 재차 불 붙은 양상이다.
이번 갈등의 발단은 지난 8일 검찰이 한의사에게 리도카인을 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제약업체를 불기소 처분하며 점화됐다. 해당 업체는 지난 2017년 리도카인을 한의사에게 판매했고, 한의사는 약침액과 리도카인을 혼합해 환자에게 주사했다. 이에 의사협회는 해당 업체를 의료법 위반교사 및 방조 혐의로 고발했지만, 이달 수원지방검찰청이 불기소 처분 내렸다.
한의사협회는 해당 처분을 검찰이 한의사의 전문의약품 사용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하고 향후 전문의약품 사용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최혁용 한의협 회장은 지난 13일 서울 강서구 협회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의 (불기소)결정은 한의의료행위에 리도카인 등의 전문의약품을 사용한 것이 범법행위가 아님을 확인시켜 준 것"이라며 "향후 한의사들도 광범위한 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방의료를 대표하는 의사협회는 이 같은 한의협의 입장을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검찰의 처분이 한의사의 의료행위가 아닌 의약품 공급업체를 대상으로 한 만큼 한의사의 전문의약품 처방은 엄연한 불법행위라는 주장이다. 실제 해당 사건에 연루됐던 한의사는 무면허의료행위로 기소돼 700만원의 벌금형(의료법 위반)을 구형받은 바 있다.
의협 측은 한의협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한의협의 이번 처분 해석은 자의적인 확대해석에 기인한 허위사실 유포라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해당 건은 한의사의 무면허의료행위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한의원에 전문의약품을 납품하는 의약품 공급업체들에 대한 제재와 처벌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고발이 이뤄졌으나, 현행 약사법상 의약품공급업체가 한의원에 전문의약품을 납품하는 것을 제한할 마땅한 규정이 없어 불기소 처분에 그친 것 뿐이라는 입장이다.
의협 측은 "한의협이 사실관계를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의도적으로 엉터리 해석을 내세우고 있는 이유는 한의사들이 한방의 영역을 넘어 의사가 하는 검사와 치료를 그대로 하고 싶다는 것"이라며 "이는 한의사가 일차의료 통합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한의협 회장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갈등이 명확치 못한 규정에 해석이 엇갈린 만큼, 중재를 위한 정부 차원의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주무부처인 복지부가 의사와 한의사 한쪽 편을 드는 모양새를 꺼리는 분위기지만, 지속적으로 불거져 나오는 양 측 갈등 봉합을 위해선 최선결 과제라는 지적이다.
서울 중구 필동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열린 외국인 관광객 한방 의료 체험전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침을 맞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기종 기자 hareggu@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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