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한국을 상대로 수출규제에 돌입한 가운데, 일본 정부가 과거 북한 핵개발에 실제로 사용된 첨단 기계와 부품이 자국 기업에 의해 재수출 된 사건을 확인하고도 해당 기업을 경고하는 선에서 사건을 축소한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
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회 위원장인 송기호 변호사가 13일 공개한 일본 경제산업성의 2008년 보도자료에 따르면, 일본 기업 '동경진공'이 제조한 ‘유확산 펌프’ ‘ 유회전 펌프’ 등 10여대가 지난 2003년 북한에 재수출돼 북핵 시설에서 사용됐다.
해당 제품들은 당시 일본기업 '나가노 주식회사'를 통해 대만에 수출됐는데, 나가노사는 통관업자를 통해 이 제품들이 북한으로 재수출될 가능성이 있음을 사전에 알고 있으면서도 수출을 강행했다. 결국 해당 제품 가운데 진공펌프 기계는 북한으로 수출돼 핵개발용으로 사용됐고, 그로부터 4년 뒤 2007년 IAEA의 영변 핵사찰에서 발견됐다.
더욱 큰 문제는 이 같은 사실을 IAEA로부터 통보받은 일본 정부의 조치다. 일본 정부는 그로부터 1년간 자국 제품의 북핵 이용 경위를 조사해 재확인하고도 나가노사에 '경고'처분하고 사건을 마무리했다. 이때는 일본 아베 신조 총리가 제90대 총리로 취임했을 때다. 일본 '외국환 및 외국무역법'에 따르면, 나가노사의 이같은 행위는 7년 이하의 징역형에 해당하는 중범죄다.
송 변호사는 "일본 정부가 자국 기업의 중대한 법 위반 사실을 확인하고도 경고에 그쳤으면서 한국에 대해서는 구체적 이유나 근거 없이 전 산업에 대해 규제하는 것은 명백한 WTO협약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WTO GATT 11조는 모든 무역 규정을 ‘일관되고,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운영하라고 규정했다"면서 "한국 수출규제는 WTO 위반으로, 일본은 수출규제를 즉시 철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근거로 우리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전범 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것을 문제삼았으나 불화수소 등 3대품목이 북한으로 유출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전날 수출제한 조치 후 가진 첫 한일 '양자협의'에서는 불화수소 등 3대품목이 개별허가 신청대상으로 변경된 것은 북한 유출과는 무관하고, 한국으로 수출하는 자국 기업이 관련 법령을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말을 바꿨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2007년 IAEA의 통보에 따라 북한 영변 핵시설에 자국 제품이 사용된 사실을 조사한 뒤 2008년 그 결과를 현지 언론에 제공한 보도자료. 사진/송기호 변호사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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