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외부의 적, 내부의 적
2019-06-28 07:00:00 2019-06-28 07:00:00
서명수 슈퍼차이나 대표
'적'은 도처에 있다. 북한의 위협 등 눈에 보이는 외적(外敵)이 있다면 내부에도 적은 있다. 지난주 중국 상하이와 항저우 등에 복원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를 둘러봤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지나서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강국에 진입했다는 사실에 마음 뿌듯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은 어느 때보다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다는 생각엔 마음 한켠이 무거웠다.

잠시 스친 생각이지만 당시 임시정부는 대일항쟁에 총력을 쏟아도 모자랐을 텐데, 내부 권력싸움과 노선투쟁으로 민족의 역량을 총집결시키지 못한 부분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신중국을 건설하기까지, 마오가 최고지도자의 위상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내부의 적, 정적(政敵)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이 진행된 것도 오버랩됐다. 마오는 장제스(蔣介石) 총통이 중국 공산당 궤멸작전을 전개하는 숨 막힌 와중에도 'AB단 숙청' 등 잠재적 경쟁자에 대한 견제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의 '적폐청산'은 무자비했다.
 
상하이에 있는 중국공산당 1차 회의 개최 유적지에는 중국혁명을 찬양하는 홍색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당시 말석에 불과했던 마오는 중국공산당과 홍군의 최고지도자가 된 후 중국 공산당 원로들을 어떻게 대접했을까. 인류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억되는 문화대혁명이 사실은 마오가 직접 지명한 후계자였던 류샤오치(劉少奇) 주석을 겨냥한 친위쿠데타였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문혁은 수천만 명의 인민을 희생시켰고 중국을 야만국가로 되돌려놨다.
 
문재인정부가 역점적으로 추진한 적폐청산도 과거 정부에서 행해진 잘못된 관행과 적폐들을 바로잡겠다는 명분이 있다. 그럼에도 야권은 정치보복으로 받아들인다. 마오의 적폐청산 역시 수정주의자 색출과 반당분자 색출이라는 명분을 갖고 있었다. 권력 유지의 측면에서는 외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위협적일 수 있다. 장기집권을 위해서는 정적의 싹을 잘라버리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내부의 적은 늘 권력자를 위협하고 비판하는 존재다. 강력한 내부의 적이 사라지거나 영향력을 상실하면 지도자는 손쉽게 대중의 시선을 확보하게 된다. 이후엔 견제없는 독재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집권하면서 민주화세력과 산업화세력의 통합을 주창했다. 노태우정부 때 정무수석을 지낸 김중권을 초대 비서실장으로 기용했다. 문재인정부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적과의 동침'을 기꺼이 택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제1야당과의 연정을 파격적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서슬 퍼런 적폐청산구호가 지배하는 지금으로선 진영이 다른 적과는 밥도 같지 안 먹는 게 불문율이다.

마오 사후 문혁의 과오를 둘러싸고 적폐청산론이 비등해지자, 덩샤오핑(鄧小平)이 흑묘백묘론을 제기하고 나선 배경은 중국의 미래를 위한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북핵문제 해결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운전자가 아니라 관전자로 밀려나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의 방북으로 북핵협상은 새 국면에 진입했다. 6·25전쟁 때 중국이 압록강을 넘어오면서 전세가 반전됐듯, 중국이 개입한 변칙전선이 형성된 셈이다. 사실상 빠른 시일 내에 '평화적'으로 북핵을 해결할 수는 없게 된 것이다.
 
여전히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외부의 적은 핵을 보유하게 된 북한이다. 문재인정부 들어 지난 3년간 세 차례의 정상회담과 평화무드 조성 등으로 남북관계엔 엄청난 변화가 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북핵이 존재하는 한 남북 간의 평화는 임시적이고 불안정하다. 어느 일방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남북 기본합의서는 종잇조각에 불과하다.

우리의 적이 북한뿐일까. 한미일 동맹이 예전 같지는 않더라도 미국과 일본의 관계는 앞으로도 큰 변화가 없다. 국익 앞에선 미국과 일본 역시 경쟁자다. 중국과 수교한 지 27년이 지나 중국은 대외 무역관계에서 우리의 주요 동반자가 됐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북한과 중국의 혈맹관계를 넘어설 순 없다.

민주국가에서 정권을 잡기 위한 정당 간 무한경쟁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외부의 적의 위협이 고조돼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고 있다면 여야를 막론하고 손을 잡아야 한다. 나라 없는 국민은 없고, 국민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 다음 정부를 누가 맡느냐가 아니라 누가 국민을 위한 정치, 누가 나라를 지키는 정치를 하느냐에 국민은 박수를 칠 것이다. 지금은 내부의 적을 색출하는 게 아니라 외부의 적의 위협에 시선을 돌려야 할 때다.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diderot@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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