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기종 기자] 줄기세포치료제를 두고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전 세계 허가 품목의 절반을 차지하는 국산 치료제의 경쟁력을 더욱 살리기 위해 규제 완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 사태가 터졌다. 허술한 당국의 관리감독 문제가 도마에 오르며 규제를 풀어주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반대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국산 줄기세포치료제는 지난 2011년 파미셀의 급성심근경색 치료제 '하티셀그램-AMI'이 포문을 연 뒤 이듬해 메디포스트 퇴행성관절염치료제 '카티스템'과 안트로젠 크론병치료제 '큐피스템'이 나란히 품목 허가를 획득했다. 이어 2014년에는 코아스템이 루게릭병치료제 '뉴로나타-알주'로 이름을 올렸다.
기관지폐이형성증과 알츠하이머 치료제 임상을 진행 중인 메디포스트와 만성 아토피피부염 치료제 개발 기업 강스템바이오텍, 뇌졸중 치료제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차바이오텍 등도 국내 주요 줄기세포치료제 개발사들이다.
국산 줄기세포치료제의 기술 경쟁력은 선진국과 어깨를 견줄 수준으로 평가된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지난 2017년 기준 국내 바이오 기술은 미국의 77.4%에 불과했지만, 줄기세포 분야는 86.9% 수준인 것을 나타났다. 국산 바이오 기술 분야 가운데 가장 선진국과 근접한 수치다.
이에 따라 줄기세포치료제 분야는 제약·바이오산업 안팎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이 같은 기술력에도 불구 지난 2014년 이후 후속 허가 제품의 등장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와 올해 초 네이처셀 퇴행성관절염치료제 '조인트스템'과 파미셀의 간경변치료제 '셀그램-엘씨'가 조건부허가 승인 문턱까지 갔지만 고배를 마셨다.
잘 나가던 국산 줄기세포치료제 탄력 제동의 주 원인으로 깐깐한 국내 규제에 화살이 집중됐다. 현행법이 기존 합성의약품을 기준으로 한 규제를 바이오의약품에도 동일하게 적용해왔기 때문이다. 엄연히 다른 의약품군에 동일한 잣대를 적용해 차세대 기술의 성장을 막고 있다는 목소리가 주를 이뤘다.
이웃 국가인 일본의 경우 2013년부터 개정된 약사법을 통해 본인의 세포를 채취 및 배양해 환자에게 주입하는 시술은 의료 기관 내 의사의 판단에 맡긴다. 대규모 임상을 마쳐야만 처방이 가능한 국내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환자 동의가 필요한 행위지만 기존 치료제로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 환자들이 또 다른 치료 옵션 선택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처방을 원하는 경우도 많다. 때문에 국산 기술로 개발한 줄기세포치료제 처방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는 환자들도 존재한다.
엄격한 규제로 이름난 중국 정부 역시 지난 2015년부터 줄기세포치료제 만을 위한 연구 및 품질관리 지침을 만들어 기술 육성에 나섰고, 지난 2016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줄기세포 관련 임상 건수에서 우리나라를 앞지르기도 했다. 합성의약품에서 바이오의약품으로 시장 무게 중심이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애써 잡은 줄기세포치료제 시장 주도권이 국내 규제에 가로막혀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특히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 등 바이오시밀러 기업이 현재 글로벌 바이오시밀러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은 배경 역시 발 빠른 시장 진입에 의한 선점 효과인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게 업계 중론이었다.
이에 따라 정부 역시 최근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다. 정부 차원의 강력한 바이오산업 육성 의지와 함께 업계 숙원으로 꼽히던 첨단재생의료법(첨생법)이 지난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문턱을 넘으며 마침내 규제 완화로 방향을 굳힌 듯했다. 첨생법은 희귀질환 치료를 위한 바이오의약품 우선 심사를 비롯해 개발사 맞춤형으로 진행되는 단계별 사전 심사, 유효성이 입증된 경우 조건부허가 진행 등을 골자로 한 법안이다.
하지만 최근 인보사가 사상 초유의 성분 변경 사태로 파문을 일으키며 규제 완화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었다. 개발사인 코오롱생명과학과 코오롱티슈진은 물론 규제당국의 검증 능력 및 절차 등도 뭇매를 맞으며 세포치료제 전반에 걸친 불신이 팽배해진 상태다. 부담을 느낀 정부는 지난 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첨생법 심의를 보류했다.
일각에선 세계 최고 수준의 권위와 엄격함을 갖춘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단 한 건의 줄기세포치료제를 승인하지 않은 반면, 국내에서 전 세계 허가 품목의 절반이 배출된 배경 역시 인보사 사태와 같은 허술한 관리가 배경이 됐을 수 있다는 의혹까지 고개를 든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최근 애써 키워온 기술력 결실을 위해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취지에 공감해 결단을 내리려던 시점에서 인보사 사태가 판도를 바꿔놨다"라며 "규제 완화가 산업 육성에 분명히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분위기 속 아직까지 상대적으로 검증이 부족한 줄기세포치료제 규제 완화에 무게를 싣기엔 부담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정기종 기자 hareggu@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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