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서윤 기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사법농단’ 의혹을 입증할 ‘스모킹 건’인 USB에 대해 법원이 증거력을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재판장 윤종섭)는 2일 직권 남용 권리 행사 방해 등으로 기소된 임 전 차장에 대해 진행한 5회 공판기일에서 임 전 차장의 USB를 증거로 채택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의 핵심 토대를 이루는 USB 효력 인정 여부를 둘러싼 임 전 차장과 검찰의 공방은 일단락이 났다. 재판부는 “재판부 합의에 따라서 USB 출력물에 따라 증거 채부를 결정하겠다”면서 “피고인 진술에 의해 USB가 사무실에 보관된 것이 확인됐으니 그 한도 내에서 사무실 PC 수색은 적법하다. 영장 기재 사실과 공소사실의 객관적 연관성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USB 속 법원행정처 문건 작성자 중 한 명인 정다주 의정부지법 부장판사도 증인으로 출석했다. 임 전 차장의 유죄를 입증하려면 ‘정 판사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직권 남용 권리 행사 방해죄’가 성립해야 한다. 임 전 차장 측은 문건의 작성이 행정처 심의관의 정당한 업무 수행이었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정 판사는 이날 증인석에서 ‘국정원 등 판결 선고를 앞두고 여야 정치권 반응을 예측하고 대응 방안을 짜는 게 당연한 업무라고 보고 수행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제가 그와 관련한 문건을 작성한 건 맞다”면서도 “당연한 업무로 여기고 수행했는지 여부는 지금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 차례 회피했다.
그러나 정 판사는 ‘상고법원 설치로 인해 사법부 구조 최상위에 있는, 인사권을 쥔 대법원장의 눈치를 더 심하게 볼 것이란 우려를 표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그런 우려를 표한 적 있던 걸로 안다”고 말한 뒤 이어진 ‘상고법원 입법을 위한 보고서를 작성한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또 양 전 원장이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사용할 말씀준비 자료와 관련해서도 제목을 ‘과거 왜곡의 광정’으로 잡은 취지에 대해 “피고인이 제목을 그렇게 달아달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대통령 면담 시 사용할 말씀자료 취지로 기재한 것이냐’는 질문에는 “피고인이 정부·여당에서 긍정적으로 볼만한 판결 자료를 뽑아달라고 해서 그러한 관점에서 작성했다”고 말했다.
매 공판기일마다 ‘셀프변론’을 해온 임 전 차장은 이날 수의 대신 흰 색 셔츠에 남색 양복 차림으로 입정했다. 재판부가 증인신문을 진행하려 하자 “한마디 하겠다”면서 형사소송법상 증인신문 준칙을 설명한 뒤 “이에 반해 신문이 이뤄지면 적극 이의를 제기할 예정이고, 재판장도 전향적으로 소송지휘권을 행사하길 바란다”고 당당하게 요청했다.
임 전 차장 측은 예고한 대로 검찰의 증인신문을 ‘유도심문이다’, ‘부동의한 증거다’는 등의 이유로 수차례 멈춰 세웠다. 급기야 검찰은 신문 도중 “이게 과연 누구의 소송인지 조금 혼란스럽다”며 “오전부터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데 정리를 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에 재판부가 임 전 차장 측에 주의를 주고 재판을 진행시키기도 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사법농단 5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서윤 기자 sabiduri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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