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영 정치부 기자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외교·통상 전문가다. 미국 뉴욕주 변호사 출신으로 세계무역기구(WTO) 수석변호사를 거쳐 노무현정부 시절 통상교섭조정관·통상교섭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대표적인 그의 작품이다.
그가 지난 2010년에 낸 책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에는 긴박했던 협상과정이 자세히 녹아있다. 회담 장소 선정부터 기싸움이 벌어지고 미국 측 주장에 담긴 문제점을 집요하게 지적하며 접점을 찾아간다. 미 무역대표부(USTR)와 의회의 역학관계 등을 이용해 미국 측 주장에 대응할 전략도 그때마다 수립한다.
김 차장의 성향을 보여주는 대목도 책 곳곳에 등장한다.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인 시절 처음 만난 김 차장은 "WTO 무역현장은 국익을 위해 개처럼 싸우는 동네"라고 설명한다. 한미 FTA 막바지 카란 바티아 USTR 부대표에게 "협상 때려치웁시다. 어떻게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이런 새가슴 접근을 하는지 나는 이해가 안됩니다"라고 일갈한다. 바티아 부대표에게 "카란, 다시 잘 생각해봐라. 지금 니네들이 FTA를 타결하려고 온건지, 깨기 위해서 온건지 난 잘 모르겠는데…"라고 말하는 장면도 있다. 말 그대로 '장난이 아닌'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철저히 장사치 논리로 협상에 임해 성과를 냈던 그는 문재인정부 출범 후 통상교섭본부장을 거쳐 청와대로 들어간다. 청와대는 김 차장 인선소식을 전하며 "외교·통상 분야에서 쌓아온 다양한 현장 경험과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풍부한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정부의 외교·통일정책을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 FTA 재개정 협상 타결 등에서 보여준 그의 역량을 높이 산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외교장관 회담 직후 김 차장은 미국으로 떠났다. 오는 11일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 의제 설정을 위해서다.
미국 내 많은 인맥을 보유하고, 산전수전 다 겪은 김 차장에게도 이번 미션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한미 FTA 체결 과정에서 김 차장은 휘하 직원들에게 "만에 하나 이게 아니다 싶으면 미련없이 깰 각오를 하라" "성사되는 방향으로 최선의 노력을 하되 상대방 요구가 무리하면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적이 있다. 이번 회동은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우리 정부는 이번 회담을 교착상태에 빠진 한반도 비핵화·평화체제 구축 논의의 물꼬를 트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회담을 불과 열흘 남겨놓고 혹여나 있을지 모르는 한미 간 이견을 반드시 해소하고, 의제를 조율해야 했다는 점에서 무게감이 컸을 것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김 차장은 1일 찰스 쿠퍼먼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부보좌관과 회동 후 '미측과 협의가 잘 됐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잘 됐습니다"는 한마디를 남겼다. 김 차장을 비롯해 실무진들의 수많은 준비를 거쳐 이뤄진 회동 후 나온 한마디는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 말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한미 정상회담, 이제 9일 남았다.
최한영 정치부 기자(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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