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이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기소되면서 그간 법관들에 대한 법원행정처의 탄압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상고법원 도입 등 사법정책 비판과 법관인사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이판사판야단법석 카페' 와해를 시도했던 사례는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다.
양승태 사법부는 판사 개개인도 ‘물의야기 법관’으로 분류해 인사상 불이익을 가하려고 했다. 이들이 규정하는 물의는 매우 광범위했다.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뿐만 아니라 ‘튀는 판결’을 한 판사들도 대법원의 입장과 배치되는 판결을 해 ‘사법행정에 부담을 줬다’는 멍에를 씌웠다. 헌법 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는 존재라고 정의한다. 법 어디에도 판사가 대법원의 입장이나 정부정책을 고려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
사법행정을 비판하거나 부담을 준 법관이라고 보기 어려운 사례도 여럿 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가 ‘토론회에서 대본을 읽는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거나, 노동자 사건에서 노동자 편향적인 판결을 했다는 이유로 '물의법관 리스트'에 오른 판사들이다. 이런 양승태 사법부의 행태는 재판거래 및 개입 혐의보다 나을게 없다. 수년간 물의야기 법관 리스트를 작성하는 수고를 사법행정 개혁에 썼더라면 지금처럼 사법부가 사법사상 최대 위기를 겪고 있진 않을 것이다.
원래 '물의야기 법관' 분류는 성추행, 음주운전 등 비위를 저지른 법관들에 대한 조치였다. 하지만 양승태 사법부는 정작 여기에 포함되는 비위 법관에 대해선 쉬쉬했다. 문모 판사의 향응수수 비위에 대해 알았음에도 사법부의 위신 실추 또는 사법정책 추진 차질 우려라는 명목 하에 은폐·축소했다. 정운호 게이트 사건 연루 판사들에 대해서도 검찰 수사 확대를 막기 위해 영장재판 개입을 시도했다.
검찰은 최근 권순일 대법관을 양 전 원장의 공범으로 보고 있어 그에 대한 기소를 검토하고 있다. 양승태 사법부에게 ‘물의’의 기준이 무엇이었는지 묻고 싶다. 그들만의 행정처에 반하는 물의와 사회에 악영향을 끼칠 물의 중 무엇을 염두한 것인지, 피고인들은 향후 재판을 통해 답하길 바란다.
최영지 사회부 기자(yj113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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