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30일 밤 10시10분 무렵,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이제 막 끝난 ‘카이고’의 공연을 본 한 청년이 옆 친구에게 감상평을 이렇게 건넸다. “내 옆에 봤어? 우리 부모님 뻘 되시는 분. 형광봉을 들고 테크토닉을 추시더라. 정말 깜짝 놀랐다니까!”
노르웨이 출신의 세계적인 DJ 카이고(Kygo)는 ‘세대 통합’의 마술사였다. 그의 음악 앞에서는 유치원생부터 중고교생, 청년, 중장년층 너나 할 것이 없었다. DJ 셋 앞에서 헤드폰을 낀 그가 ‘트로피컬 사운드’를 홀에 울리자 삽시간에 ‘춤 바다’가 됐다.
노르웨이 출신의 세계적인 DJ 카이고(Kygo).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트로피컬 하우스’란 범주로 설명되는 이 사운드는 밝은 청량감이 주 무기다. 신스사이저, 팬 플루트, 킥 드럼 등을 써 자연과 평화, 자유 정신을 멜로디컬하게 그려낸다. 강한 비트감이 주를 이루는 일반 EDM 계열과는 차별화되며, 카이고는 2015년부터 이 사운드를 하나의 장르로 구축한 ‘새뚝이’로 평가 받는다. 지난 2015년에는 EDM 뮤지션 처음으로 노벨 평화상 콘서트에 오르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관객들은 그가 등장한 이날 8시16분부터 ‘주술’에 걸린 듯 했다. 큐브 형태의 스크린 위에 선 그가 헤드폰을 쓰고 DJ 장비를 매만지니 3800명이 들어 찬 홀 전체가 일렁였다.
노르웨이 출신의 세계적인 DJ 카이고(Kygo).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한번 쯤 들어봤을 법한 세계적인 가수들이 그의 ‘트로피컬’ 옷을 입고 시도 때도 없이 불려 나왔다. 미국 록 밴드 이매진드래곤스, 브리티쉬 팝의 신성 두아리파, 세계적인 DJ 티에스토 등 유명 곡들은 원곡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중간 중간 멜로디컬한 청량감이 더해졌다. 고 아비치(Avicci)의 ‘위드 아웃 유(Without you)’를 틀 때는 거목 한 그루를 중심으로 쏟아지는 은하수 영상이 관객들의 형광봉과 겹쳐지며 홀을 하나의 ‘우주’로 만들었다.
카이고가 직접 만든 곡들은 자연주의 감성을 가득 머금은 듯 했다. 울창한 숲이 떠오르는가 하면 절벽을 가로 지르는 세찬 폭포수가 연상됐다. 새벽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 듯한 몽글몽글한 멜로디가 가슴을 미여 잡다 점차 증폭되고, 말미에 가선 로맨틱하고 자유로이 폭발하는 식이다.
노르웨이 출신의 세계적인 DJ 카이고(Kygo).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애초에 그의 공연은 지정석이란 개념이 불가능했는지도 몰랐다. ‘스타게이징(Stargazing)’, ‘스테이 투 드롭(Stay 2 Drop)’, ‘캐리 미(Carry Me)’, ‘스톨 더 쇼(Stole the Show)’ 등 대표곡들이 울려 퍼질 무렵부터는 관객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춤을 췄다.
몇몇은 춤을 추러 빈 공간을 찾아 헤매는 ‘유목민’에 가까웠다. 유치원생과 중고교생, 넥타이를 풀어 헤친 청년, 가족을 데리고 나온 40대 가장, 아들과 함께 나온 어머니. 공연 중후반 쯤는 통로부터 입구 쪽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난 관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를 무렵, 카이고는 서정적인 피아노 무대도 곁들였다. 캡모자를 뒤로 쓴 프리스타일 패션으로 ‘기계를 소거한 음악’을 연주했다. 여기에 더해진 현악 3중주의 웅장하고 장엄한 사운드는 그의 넓은 작곡 스펙트럼을 느끼게 해주었다.
노르웨이 출신의 세계적인 DJ 카이고(Kygo) 공연장.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1시간 20여분간 총 37곡을 쏟아낸 그는 팬들의 앙코르 요청에 2분 뒤 다시 나와 ‘디스 타운(This Town)’과 ‘파이어스톤(FIRESTONE)’을 들려줬다. 공연 내내 “공연이 어떻냐”, “땡큐 서울”을 외치던 그는 마지막 무대를 마친 뒤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춤으로 전 세대를 통합한 이 놀라운 마술사의 공연은 EDM이 젊은 이들의 클럽음악으로만 치부되는 편견과도 정확히 대척점을 이루고 있었다. 실제로 공연장에는 ‘클럽 느낌’을 그리고 왔다가 전혀 다른 광경에 놀라워 하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유치원생 아이들을 데리고 공연장을 찾은 40대 김성훈씨(익명)는 “가족과 유럽에서 지낸 적이 있는데 당시 현지 EDM 문화를 즐기면서 매력을 알게 됐다”며 “가족들과 공연장을 틈틈이 갈 정도로 EDM을 좋아한다. 오늘도 부인과 아이들과 함께 와 신나게 즐긴 것 같다”고 말했다.
아들과 함께 공연장을 찾은 50대 한정선씨(익명)도 “이런 음악이 있는지는 모르고 아들의 손을 잡고 왔다”며 “처음에는 분위기 적응이 안됐는데 주위 사람들을 보면서 나중에 일어나 춤을 추며 즐겼다. 앞으로 이런 공연을 자주 찾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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