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매우 난처한 표정으로 9살 소녀의 보호자가 상담을 요청했다. 형편이 어려워 비보험 치료인 한방치료를 받기가 어렵다며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아이 상태에 대해서만 정확한 의견을 듣고 싶다고 했다. 기꺼이 진료를 하겠다고 하고 사정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아이는 2년 반째 유명대학병원 신경과에서 뇌전증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물론 항경련제를 처방받아 복용중이다다. 문제는 뇌전증 약을 복용중임에도 불구하고 경련이 반복된다고 한다. 평균 3개월에 1회로 경련이 반복되니 트리렙탈만으로 안되는지 최근에는 오르필까지 추가하여 두 종류의 항경련제를 복용하고 있는 상태였다.
절망적인 상황을 설명하는 긴 이야기 끝에 부모의 질문은 한가지로 집중되었다. 아이가 혹시 롤란딕 간질인지 봐달라고 하는 것이다. 롤란딕 간질이라면 언젠가는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생기기 때문이다. 롤란딕 간질인지 아닌지 여부는 뇌파를 판독해봐야 알 수 있지 한의사가 진맥한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행히도 환자는 뇌파검사 CD와 더불어 담당의사의 뇌파판독지를 가지고 있었다.
설마 항경련제가 듣지도 않는데 롤란딕은 아니겠지 싶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전형적인 롤란딕 부위에서 간질파가 확인되었다. 그것도 수면 중에만 극서파가 확인되어 활동중에는 경련의 위험성이 거의 없는 전형적인 롤란딕 간질이었다. 아이의 경련시간은 1분이내의 부분발작으로 위험성이 없는 경련 양상이다. 항경련제가 듣지 않지만 롤란딕은 분명하였다.
“전형적인 롤란딕간질 입니다 ” 라고 하자 부모들은 너무도 기쁜 마음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하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뇌파 검사 결과를 그대로 이야기 했으니 필자에게 감사할 일은 아니다.
그들이 이후 항경련제 복용을 중지할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매우 분명한 것은 선택권이 부모에게 있다는 것이다. 롤란딕 간질이나 소발작과 같이 경련이 미약하고 양성경과가 명확한 경우는 항경련제 복용을 의사가 강제해서는 안 된다. 이후에 좋아질 것이라고 명확히 고지하고 항경련제 복용여부에 대한 장단점을 설명해 부모에게 선택권을 넘겨야 한다.
이렇게 사전고지가 되지 않은 채 항경련제를 처방하는 것은 강제치료이며 과잉진료행위가 된다. 항경련제가 유발할 부작용에 대해서도 알고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지 설명 없이 모른 채 무조건 항경련제를 먹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소아뇌전증이라면 아이의 미래를 위해 철저히 부작용을 고지하고 선택권을 부모에게 주어야 한다.
◇ 김문주 아이토마토한의원 대표원장
- 연세대학교 생명공학 졸업
- 가천대학교 한의학과 졸업
- (현)한의학 발전을 위한 열린포럼 운영위원
- (현)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부원장
- (현)플로어타임센터 자문의
- (전)한의사협회 보험약무이사
- (전)한의사협회 보험위원
- (전)자연인 한의원 대표원장
- (전)토마토아동발달연구소 자문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진규 온라인뉴스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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