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용 대마, 이제는 빗장 풀어야)①아이 살리려다 마약사범 위기…선입견에 우는 의료용 대마
세계보건기구도 의학적 효능 인정…'마약' 편견에 국내 행보 더뎌
2018-11-02 10:00:00 2018-11-02 10:00:00
[뉴스토마토 정기종 기자] 1976년 제정된 대마관리법과 2000년 마약류관리법으로 엄격히 관리되고 있는 대마는 국내에선 여전히 '마약'으로 인식되고 있다. 대마하면 떠올리는 이미지 역시 연초처럼 피우는 방식의 기호용 대마가 압도적으로 많다. 하지만 대마를 대하는 전세계적 인식은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추출 성분을 활용한 의료용 오일은 물론 건강기능식품까지 다수 국가에서 합법화됐고,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대마의 의료용 효능을 인정하고 국제협약을 통해 이를 공표할 준비를 하고 있다. 국내 역시 의료용 대마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관련 법안 개정을 예고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 자세는 '인정' 보다는 '관용'에 가깝다. 검증된 해외 의료용 대마의 효능과 각국 현황을 통해 국내 의료용 대마의 현 주소를 짚어본다.
 
#. A씨는 소아 뇌전증 가운데 가장 심각한 레녹스가스토 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이의 엄마다. 생후 1년 6개월 이후부터 증상을 보였던 아이는 원인 모를 발작을 반복했다. 불행 중 다행스럽게 A씨는 현직 의사였다. 다수의 해외 논문을 통해 대마 추출 성분인 칸나비노이드(CBD) 오일이 뇌전증 경련 및 발작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A씨는 해외 직구로 CBD 오일 구매해 아이에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주치의가 인정한 뇌파 호전과 발작 안정 등의 눈에 띄는 효과는 A씨에게 기적과도 같았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세관에 적발된 A씨는 검찰에 출석해 소변과 머리카락 검사를 받았다. 마약사범들이 익히 받는 그 검사다. A씨는 국내 대형병원으로부터 전문의 소견서를 받아 제출하고 나서야 겨우 기소유예 처분(죄는 있지만 검찰이 기소하지 않아 수사기록은 남긴 채 사건을 종결)을 받았다. 분명한 효과가 있는 CBD 오일을 당장 아이에게 처방하기 위해서 A씨는 한국을 떠나거나, 범죄자로 살아야 한다.
 
현직 의사이자 난치병 환아의 어머니가 '마약류관리법 위반'으로 검찰 수사를 받아야 했던 이유는 국내법이 연구목적을 제외한 그 어떤 대마도 유통을 금지하고 있는 탓이다. 때문에 해외에선 합법적으로 인정받은 대마(또는 추출 성분)를 들여오거나 사용하는 것은 마약류관리법 위반에 해당된다. 당연히 아직 의료용 대마의 효능에 대한 법적 인정은 없는 상태다.
 
하지만 대마의 의료적 효능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검증된 바 있다. 다수 해외 논문을 비롯해 국제기구인 UN의 산하기관 세계보건기구(WHO)까지 지난해 11월 전문가 심의 및 조사(약물의존성 전문가 위원회) 끝에 의료용 대마가 뇌전증과 완화치료에 유용한 치료법이며, 중독위험이 없다고 선언한 상태다. WHO의 결론은 당장 내년 3월에 있을 UN의 '마약단일협약' 개정안 가결에 반영된다.
 
한국을 포함한 136개국을 당사국으로 둔 마약의 국제적 규제에 관한 9개의 협약을 통합 정리한 마약단일협약이 개정을 앞두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장 최근 개정인 1972년 이후 의료용 대마에 대한 연구결과들이 쏟아져 나오며 효과를 입증하고, 이를 인정하는 과정들이 끊임없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뇌전증을 비롯해 알츠하이머성 치매, 파킨슨병 등의 뇌 인지관련 질환과 암성 통증, 자폐증, 크론병 등 그 적용 범위도 다양하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WHO를 통해 의료용 대마의 효능은 논란의 여지없는 공신력을 갖추게 됐다.
 
반면, 국내에선 의료용 대마의 효능과 관련 연구자료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사실상 전무한 수준이다. 군사정권 시절 마약류로 엄격히 분류된 뒤 '대마는 곧 마약'이라는 인식이 오랜 기간 연구를 발목 잡아온 탓이다. 의료적 효능 입증을 위해 연구자 임상을 주도해야 할 기업들은 정부 눈치에 선뜻 나서지 못했고, 지원이 필수적인 연구자들 역시 채택되지 않을 것이 불 보듯 뻔한 의료용 대마를 연구주제로 삼기를 꺼렸다. 자연스럽게 국내 의료용 대마와 관련된 연구는 도태됐다.
 
'대마'라면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국내 인식과 무지는 아편을 비롯한 모르핀, 코카인 등 보다 중독성이 강한 마약류는 의료 목적의 사용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대마만은 예외 선상에 놓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50만명에 달하는 뇌전증 환자와 가족을 비롯해 의료용 대마 효능이 입증된 질환을 가진 수많은 이들이 존재하는 약을 쓰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특히, A씨 사례에서 문제가 됐던 CBD오일은 인체의 통증 및 수면 등의 패턴을 조절하는 엔도카나비노이드 시스템 활성화를 위해 체내 성분과 똑같은 카나비노이드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해외에선 건강보조식품의 일종으로 분류된다. 미국과 캐나다에선 편의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심지어 국내에서도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에선 대회에 참석한 캐나다 선수 등이 통증 완화를 위해 치료용으로 사용했고, 세계 반도핑기구도 이를 허용했다. 국내에서 치러진 국제 대회 참가 선수들은 떳떳하게 사용한 반면, 치료를 위해 해외에서 구입한 환자 가족들은 범죄자 취급을 받는 촌극이 일어난 셈이다. 대마에 대한 선입견에 갇힌 국내 인식과 법령이 얼마나 뒤쳐져 있는지를 극명히 드러낸 사례다.
 
해외 국가의 경우 꾸준한 연구와 입증의 과정을 반복하며 의료용 대마 수용에 발 빠른 행보를 보여 왔다. 지난 1992년 이스라엘을 시작으로 미국과 캐나다, 스웨덴, 독일, 네덜란드, 호주, 핀란드 등의 보건선진국들이 이미 의료용 대마를 합법화하고 있다. 국내와 유사하게 마약류 처벌에 엄격한 이웃국가 중국과 일본 역시 의료 용도의 대마는 법으로 허용 중이다.
 
국내라고 관련 움직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15년 19대 국회 당시 의료용 대마를 인정하는 마악류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 통과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의료용 대마에 대한 선입견과 무지에 기인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지난해에는 대마를 재배해 마직물을 만드는 안동의 권영세 시장이 의료용 대마의 합법화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9월 3년 만의 재도전 끝에 의료용 대마 합법화 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위원회와 전체회의에서 가결되며 물꼬를 텄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 하에 국가 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서 승인된 수량만 수입해 환자에게 제공토록 하는 것이 골자다. 수입량 및 환자 제공량은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에 보고된다. 법제사법위원회 심사와 본회의 의결만 남겨둔 상태다.
 
48년 만에 열린 의료용 대마 빗장에 환자단체들 역시 반기는 분위기지만 본회의 진입도 전에 우려되는 사항들도 속속 제기되고 있다. 국내 뇌전증 환자만 50만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한정된 인력으로 운영되는 단일 센터를 통해 공급되는 물량의 한계와 최소 수개월이 예상되는 환자 수령까지 환자가 감내해야할 고통, 구축되지 않은 관리시스템과 한정된 인력 등 넘어야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국내에서 의료용 대마 합법화 운동본부를 설립해 이끌던 강성석 한국카나비노이드협회 상임 고문 겸 이사는 "의료목적으로 꼭 필요한 이들에게만 공급하겠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다른 향정신성 의약품에 비해 위험성과 중독성이 현저히 낮은 대마를 여전히 마약류로 인식하고 있는 데 기인한 반쪽짜리 법안"이라며 "정부가 관리하되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만큼 원활히 처방받을 수 있는 시스템은 아닌 셈"이라고 지적했다.
 
 
정기종 기자 hareggu@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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