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양승태 사법부가 헌법재판소 무력화 전략 문건을 작성한 것에 대해 김헌정 헌재 사무처장이 "충격적이고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김 처장은 11일 서울 종로구 헌재 중회의실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헌재 국정감사에서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으로부터 "양승태 사법부가 헌재를 겨냥해 작성한 '헌재 관련 비상적 대처방안' 문건에 대해 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이같이 답했다.
이어 김 처장은 "이미 여러 언론에 보도됐고 의원님이 지적하신 점에 비춰 상당히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검찰 수사 중이라 객관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다"며 "국민 권익 보호와 국가 법질서 확립을 위해 헌재와 대법원이 함께 협의하고 견제해야 한다. 국민의 권익을 위해 무엇이 바람직한지 긍정적으로 협의해야 한다. (검찰 수사 후) 객관적인 팩트가 나오면 차분하게 대응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사법농단 사태는 법관 탄핵을 하고도 남을 사건"이라고 지적하자 "국회에서 탄핵여부를 정하면 헌재에서 엄중하게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현행 국회의원 3분의 1 이상이 발의하고 과반 이상이 찬성하면 법관 탄핵소추가 가능하다.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헌재의 탄핵결정을 거쳐 법관을 파면할 수 있다.
이날 여·야는 김기영·이영진·이종석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 임명 지연으로 인한 심판정족수(7인) 미달로 기능이 마비된 '식물 헌재' 책임 소재를 놓고 격돌했다. 여당은 헌재 기능을 마비시킨 국회가 국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야당에 책임을 물었고 야당은 국회가 할 일을 해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전날 발언을 거론하며 야당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특히 야당인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의사진행 발언 기회를 얻자마자 작심한 듯 "정부를 견제하는 잣대로 스스로를 돌아보며 국회가 해야 할 기본적 책무도 다해야 한다"라는 문 대통령 발언을 문제 삼았다.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하루빨리 헌재가 정상화돼야 한다며 현재 표결조차 미루고 있는 야당을 비판했다.
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은 "전날 문 대통령이 재판관 임명 지연을 야당 탓으로 돌리는 발언을 했다. 문 대통령 말은 어불성설이고 심히 유감"이라며 "문 대통령은 스스로 국민에게 약속했던 고위공직자 임명 원칙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다운계약서 작성으로 탈세가 확인된 이석태·이은애 재판관 임명을 강행했다. 대통령은 야당을 탓할 게 아니라 먼저 원칙을 파기한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은 "대통령이 재판관 공백 상황을 국회 탓으로 돌렸는데 현재 3000여명의 법관도 김기영 후보자와 김명수 대법원장이 돈독한 사실을 알고 있다. 김 후보자는 부인 문제도 있다"며 "일방적으로 이번 사태 책임이 한국당에 있다는 주장은 정치적 공세"라고 주장했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도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야당을 정조준해 국감할 권리를 방해하고 국감을 정쟁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 우월 지위로 훈계하고 있다"며 "야당이 그토록 반대하는데 대통령 권력을 가지고 이석태·이은애 재판관이라는 사상 최악의 후보자 임명을 강행했다. 정치적 중립성이 중요한 헌재를 흔들고 있는 것은 문 대통령과 김명수 대법원장"이라고 주장했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가 의구심을 가질 수 있지만, 본인들이 몇 번을 해명한 사실을 가지고 의혹을 계속 제기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한국당 의원들은 자꾸 문 대통령 발언을 언급하는데 헌재가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국회가 책임을 다해달라는 얘기인데 틀린 말인가. 대통령 말고 국민을 좀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춘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국감이라는 게 기관 문제점을 지적해서 발전방안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국회가 헌재를 무력화시키고 있는데 지금 국감을 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라며 "국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헌재가 현재 정상적인 업무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 국회의원 한 사람으로서 사과한다"고 말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우리 국회가 자격이 있는지 지적하고자 한다. 재판관 인사청문회가 끝났고 어떤 당에서 추천한 재판관이든 인준하는 게 원칙이다. 하자가 있다고 하면 본회의 표결을 거쳐 결정하면 된다"며 "국회가 '식물 헌재'를 만들어 놓고 우리가 누구를 상대로 국감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 지금이라도 청문보고서를 채택해서 표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헌정(오른쪽)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헌법재판소 및 헌법재판연구원에 대한 국정감사 시작을 앞두고 헌재 관계자에게 보고를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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