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B 해외 간다는데…중소 제조사는 어디에
2026-03-25 16:25:08 2026-03-25 16:32:45
서울 시내 한 이마트 안의 PB 제품 코너.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이혜지 기자] 지난 24일 국회에서 유통사 자체브랜드(PB·Private Brand) 확대에 따른 중소 제조사 브랜드 경쟁력 약화 문제가 논의된 가운데, 정부가 올해부터 추진하는 중소 제조사 해외 동반진출 지원사업이 수출 실적을 넘어 제조사 브랜드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산업통상부는 올해부터 '유통기업 해외진출 지원사업'을 신설하고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를 통해 운영에 나섭니다. 브랜드 파워를 갖춘 국내 유통기업 13개사를 선정해 중소 제조사의 해외 동반 진출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유통망 플랫폼 8개사와 온라인 역직구 기업 5개사로 나뉩니다. 선정 기업은 각각 최대 63억원, 11억3000만원 규모의 매칭펀드를 지원받으며 3년간 연간 471억원이 투입됩니다. 산업부 관계자는 "중소 제조업체들이 단독으로는 얻기 어려운 해외 판로를 열어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PB는 유통사가 직접 기획·발주하고 중소 제조사에 생산을 맡기는 방식입니다. 일반 브랜드(NB·National Brand)보다 마진율이 높아 유통사 수익성이 크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고물가·내수 침체 속에서 편의점 3사 매출에서 PB 비중은 30% 안팎까지 올라섰고, 대형마트에서도 PB 매출 비중이 20%를 넘는 곳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만 PB 납품에 집중하는 동안 제조사 자체 브랜드 경쟁력이 축적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지적됩니다.
 
취지는 분명하지만 사업 구조를 들여다보면 과제도 보입니다. 신청 자격은 유통 기업에만 주어지고, 중소 제조사는 유통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구조입니다. 유통사가 기획과 브랜드를 주도하고 제조사가 생산을 담당하는 PB 방식이 해외에서도 이어질 경우, 제품은 수출되지만 시장에 남는 이름은 유통사 브랜드입니다.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유통·제조업 상생발전을 위한 제도개선 간담회'에서도 같은 맥락의 문제 제기가 이어졌습니다. 발제를 맡은 정연승 단국대 경영대학원장은 "PB 납품으로 중소 제조사의 매출과 판로는 늘어나지만 이익으로 이어지지 않고 R&D·브랜드 마케팅 역량도 축적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변성준 한국상생제조연합회 실장도 "PB는 제조사의 성장 발판이 될 수 있지만 목적지가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제조사 브랜드를 국가가 직접 자산화하는 전략을 택한 나라들도 있습니다. 독일은 기술력 있는 강소기업을 정부가 '히든챔피언'으로 공인하고 자체 브랜드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도록 마케팅을 집중 지원합니다. 일본은 제조 혁신 기업에 국가 인증을 부여해 해외 바이어와의 협상력을 높이는 '모노즈쿠리' 지원 정책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Made in Italy' 정책을 통해 중소기업 제품의 품질과 감성을 국가가 보증함으로써 브랜드 가치와 단가를 동시에 끌어올렸습니다. 세 나라 모두 유통사 뒤에 제조사를 세우는 방식이 아니라, 제조사 이름 자체를 경쟁력으로 키우는 구조를 택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종우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는 "수출 관점에서 취지는 잘 잡았다"면서도 "PB와 NB 비율을 고려해 제조사 브랜드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PB로 진출할 경우 계약 보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수출 경로는 확대되지만 브랜드가 남지 않는 구조가 반복될 경우 '이름 없는 수출'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471억원 사업이 수출 실적 확대를 넘어 중소 제조사의 브랜드 경쟁력 강화로도 이어질 수 있을지, 제도 설계의 보완이 과제로 남습니다. ‘판로 확대’와 ‘브랜드 축적’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지가 향후 정책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꼽힙니다.
 
 
이혜지 기자 zizi@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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