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우찬 기자] 롯데가 모든 계열사에 상생결제를 도입한다.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은 롯데와 기업 간 대금결제 환경 개선을 위한 상생결제 도입·확산 협약을 체결했다고 27일 밝혔다. 상생결제를 개별 기업이 아닌 그룹 차원에서 전 계열사에 도입하는 것은 롯데가 처음이다. 다만 그간 대금결제 지급 미루기 등으로 협력업체에 피해를 줬던 롯데가 '보여주기식 상생 퍼포먼스'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일각에서 나온다.
상생결제는 대기업이 상환청구권이 없는 채권을 발행하고, 조기 현금화를 원하는 1차 이하 모든 협력사들이 대기업 수준의 낮은 할인율로 납품대금을 조기에 현금화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그동안 대기업들은 1차 협력사에 도움이 되는 취지로 현금결제를 많이 해왔는데, 그 과실은 1차 협력사에서 2, 3차 협력사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다음 달 시행예정인 상생협력법 개정안에 따르면, 예를 들어 대기업이 1차 협력사한테 2억원의 결제대금 중 50%에 해당하는 1억원을 상생결제로 지급했다면, 1차 협력사도 2차 협력사에게 같은 비율인 50% 이상으로 상생결제 또는 현금결제로 의무적으로 줘야한다.
협력재단 등에 따르면 롯데는 이번 협약으로 올해 말까지 일부 특수 법인을 제외한 롯데그룹 모든 계열사에 상생결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롯데는 전 계열사의 기존 대금결제 중 현금결제를 제외한 신용결제 부분을 100% 상생결제로 전환하기 위해 지난 7월 관련 계열사와의 협의를 마쳤다.
롯데지주 오성엽 부사장은 "롯데는 이번 상생결제 도입이 2차 이하 협력사들에게도 확산돼 현금유동성과 대금지급 안정성 확보에 실질적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롯데는 협력사들을 위한 대금지급 선진화와 동반성장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형호 협력재단 사무총장은 "협력재단은 오는 21일부터 시행되는 상생결제 의무화에 앞서 대기업의 상생결제 도입을 적극 독려하고 있다"며 "협력사의 대금결제 환경 개선을 위해 상생결제를 전 계열사에 도입하고자 하는 롯데의 적극적인 행보가 다른 기업들에게 좋은 선례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중소벤처기업계 관계자는 "전체 납품대금에서 상생결제를 하는 비중은 기업 자율"이라며 "대기업이 1차 협력사한테 상생결제 비중을 높이면 높일수록 상생 의지가 높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협약식과 관련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롯데가 기존 피해 협력업체에게 진심어린 사과 없이 보여주기식 상생쇼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기업의 상생결제 도입은 이미 확산 중인데, 롯데가 생색내기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 협력재단에 따르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GS리테일, LG디스플레이, 삼성디스플레이, SK하이닉스 등 334개 구매기업들이 약정을 맺었으며, 2015년 3월 도입 이후 지난달 기준 246조3000억원이 상생결제로 지급됐다.
롯데마트의 2차 협력업체 대표였던 A씨는 "상생펀드를 조성한다는데 협력사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돼야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외국에 있는 롯데백화점 내에서 레스토랑 입점 업체 대표를 맡았던 B씨는 이번 롯데의 상생결제 도입에 대해 "쇼맨십에 불과하다. 진정성이 있다면 갑질 피해를 본 업체들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계약 기간 5년에서 3년 만에 강제 퇴출 통보를 받은 B씨는 "롯데의 갑질로 파산하고 가정이 파탄에 이른 분들이 많다"고 씁쓸해했다. 롯데건설 1차 협력사였던 C씨는 "하도급법에 따라 결제대금을 60일 안에 줘야하는데, 그걸 떼먹는 게 롯데"라며 "다른 대기업들이 이미 하고 있는 상생결제를 갖고서 생색내기보다는 대금결제부터 지킬 일"이라고 비판했다. 롯데피해자연합회에 따르면 롯데로부터 피해를 당한 협력사들의 피해금액은 500억원에 육박한다.
일각에서는 오는 29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항소심 결심공판을 앞둔 롯데가 여론몰이를 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신 회장은 면세점사업 재승인 등 경영 현안 해결을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도움을 받는 대가로 최순실씨와 관련된 K스포츠재단에 추가로 출연금 70억원을 낸 혐의(제3자 뇌물공여)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오는 10월 항소심 공판이 유력한 가운데, 신 회장 측은 선처를 호소하고 있다.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