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월은 바캉스의 계절이다. 프랑스에서도,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피서를 떠나거나 휴식을 취한다. 바캉스(Vacances)는 라틴어 바카르(vacare)의 복수형으로 일정 기간 동안 사람이 습관적인 업무를 잠시 멈추는 것을 의미한다.
바캉스 개념은 도시문명의 출현과 관계가 깊지만 농업사회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농업사회는 기후 때문에 1년 내내 일의 리듬이 같을 수 없다. 중세 서유럽에서는 여름 수확기에 모두가 농장으로 나가 일할 수 있도록 대학이 문을 닫는 ‘바캉스’가 이미 존재했다.
19세기 들어 바캉스는 서유럽 귀족과 부르주아 계급을 중심으로 널리 퍼졌다. 바캉스는 이에 따라 상류계층이 한 철 건강을 위해 그들의 거처를 떠나 바닷가나 산 등 자연 환경을 즐기기 위해 별장으로 떠나는 것을 의미했다. 특히 영국인들은 경제력이 높아지자 가장 먼저 해변이나 영국해협 주변(도빌·디나르 등)의 해수욕장, 프랑스 남부 코트다쥐르(니스의 영국 산책로), 비아리츠 등 경치 좋은 곳으로 바캉스를 떠났다.
프랑스에서는 1940년대 여름휴가가 생기면서 바캉스는 이동하거나 여행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광고가 성행하면서 바캉스는 불가피하게 됐다. 프랑스에서는 1936년 최초로 2주간의 유급휴가가 도입됐고 그 기간은 1956년 3주, 1969년 4주, 1981년 5주로 늘어나 바캉스는 프랑스 문화로 자리 잡았다. 물론 경제가 좋지 않자 현재 프랑스의 세 가정 중 한 가정은 바캉스를 떠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바캉스 개념은 오늘날 완전히 바뀌고 있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바캉스는 습관적인 업무를 잠깐 멈추고 휴식을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러니하게도 습관적인 업무의 연장선상에서 바캉스를 보내는 사람들이 무척 늘고 있다.
임금 노동자들은 바캉스를 떠날 때 선글라스, 선크림 외에 스마트폰을 여행 가방에 꼭 챙겨 넣는다. 프랑스 대행노동알선소 카파(Qapa)의 연구에 따르면 바캉스를 보내는 42%의 프랑스인들은 업무용 메시지를 하루에도 여러 차례 체크한다. 프랑스인들은 일 년 내내 바캉스를 손꼽아 기다리지만, 업무와의 연결고리는 쉽게 끊을 수 없다. 카파에 따르면 프랑스인들은 휴양지에서도 전화나 메시지 10통 중 6통에 응답하고 있다. 59%의 프랑스인들은 휴가 중에도 일이 계속되는 것을 방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프랑스인들이 ‘워커홀릭’이 된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들이 피서지에서 각종 전자기기를 이용해 메시지를 체크하는 것은 휴가 후 회사로 차분히 돌아가기 위해서다. 프랑스인들은 일을 좋아해서 이 연결고리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응답자의 68%는 휴가 동안 직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복귀 후 보다 차분해질 수 있다고 했다. 사무실에 남아 있는 동료들을 신뢰하지 못하는 그들이 휴가 동안 메시지를 체크해 회사 돌아가는 상황을 힐끗 보고 싶어한다는 말도 있다.
각종 전자기기의 진화와, 4차 산업혁명 바람 속에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일취월장하고 있다고 떠들어대지만 실상은 임금 노동자가 바캉스마저 마음 편히 보낼 수 없게 족쇄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진화라고 볼 수 있다는 말인가.
다행이 한국은 아직 일을 하면서 휴가를 보낸다는 워케이션(Workcation)이 유행하고 있지 않다. 물론 한국의 경우는 주 35시간 일하고 5주의 유급휴가를 보장하는 프랑스와 너무도 다르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이 아직은 남의 일로만 여겨질 수 있다. 주 68시간 일하고 휴가는 길어야 5일인 우리는 노동시간부터 줄이는 것이 급선무다. 다행히도 최근 정부는 주 52시간 노동을 법제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가는 늘리지 않는 상태다. 노동 시간을 줄였으면 휴가도 늘려주는 것이 정석이다. 차츰 이런 방안도 모색하리라는 생각에 크게 염려는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앞으로 노동 시간을 줄이고 휴가를 늘인다면 서양식 워케이션을 도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이것만은 제발 따라하지 않길 바란다. 휴가지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에너지를 충전해 산뜻하게 일터로 복귀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불가피한 일이 있을 때 휴가를 떠난 동료에게 연락을 취해 파일을 찾거나 주요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전자기기의 활용은 분명 문명의 이기다. 그러나 이런 특수한 경우에만 워케이션을 허용하여 한국의 임금 노동자들이 바캉스를 오롯한 휴식의 시간으로 보낼 수 있는 문화를 창조하길 기대한다. 기술혁명은 인간을 자유롭고 여유롭게 하는 하나의 방편이어야지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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