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낙태죄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의사와 정부 측이 낙태죄 조항 위헌 여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태아의 생명권이 존중돼야 하는지 아니면 임산부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이 우선돼야 하는지를 놓고 맞붙었다.
헌법재판소는 24일 대심판정에서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 형법 제269조 제1항(자기낙태죄)과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정한 형법 제270조 제1항 중 '의사'에 관한 부분(의사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기에 앞서 공개 변론을 열었다.
자기낙태·촉탁낙태 처벌 규정의 위헌성 쟁점
이번 변론의 쟁점은 부녀의 낙태를 처벌하는 자기낙태죄 조항 및 의사가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 의사낙태죄 조항이 각각 임부의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해 헌법에 위반되는지다.
청구인 측 대리인은 "낙태는 국가가 침해할 수 없는 여성의 선택 사항이다. 개인 여부를 떠나 가정 구성원 및 사회 전체와 연결된다. 임부의 경우 낙태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고 낙태하지 않으면 임부와 태아 모두 더 불행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청구인 측 대리인도 "낙태는 임부 인권의 문제로 국가가 사생활을 보호해줘야 한다. 태아가 가지는 잠재적 생명권에 대한 이익보다 여성의 결정을 따르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현재 법조항, 여성희생 강요"
이외 청구인 대리인은 "피임을 해도 불가피하게 임신할 수 있다. 현재 조항은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고 여성의 자기결정권 및 건강권을 침해한다. 자녀 출생이나 양육 등은 여성이 자기 운명을 결정할 권리이므로 숙고 끝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며 "낙태를 허용하면 낙태율이 올라간다고 정부는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여성이 덜 위험한 시기에 안전한 수술이 가능한 의료기관에서 숙련된 의료인에게 적절한 비용으로 중절 수술을 받을 가능성이 줄어들게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부 측 대리인은 "헌법은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를 천명하고 있다. 태아도 생명권 주체이기에 국가 기본권 보호 범주에 당연히 포함된다"며 "낙태죄 규정은 국가 의무를 입법화한 것으로 폐지한다면 태아 생명권 등 위헌적 사례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태아도 생명권 주체…보호해야"
이어 "청구인 측은 예외적으로 임신 12주 이내 태아에 대해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2주 이내 태아와 같이 특정 단계 미만의 태아를 낙태하는 게 정당한지 의문이다. 임신 8주만 돼도 장기 형성과 고유한 인간의 특징이 드러난다. 또 모든 감각기관이 생기고 임신 16주가 되면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태아마다 구체적인 차이가 존재하는데 어느 시점을 채택해서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의사낙태죄 관련해서도 "의사 임무는 생명 보호이고 여기에 태아도 포함된다. 인간 생명을 지키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의사의 낙태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어 의사 처벌 규정 역시 위헌이라고 볼 수 없다"며 "태아는 자기를 지킬 수 없는 나약한 존재다. 단지 심장 소리로 살아있음을 증명한다"고 밝혔다.
"예외적 낙태 허용은 '강요된 선택권'"
주심인 조용호 헌재 재판관이 "생명권에 중점을 둬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 낙태를 허용하는 게 잘못됐다고 볼 수 있느냐"고 묻자 청구인 측은 "강간이나 준강간에 의한 임신 등일 때 낙태가 가능하나 '강요된 선택권'이다. 임신 12주 이내의 경우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청구 취지에서 낙태죄 조항이 위헌이라고 주장했는데 전면 폐지하는 것은 파급력을 생각할 때 위험 부담이 크다"고 밝혔다.
조 재판관이 "여성이 임신을 원치 않은 경우가 있을 텐데 전면적으로 낙태를 전혀 허용하지 않은 것은 여성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라고 묻자 정부 측 대리인은 "개별 사안으로는 좀 지나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국가 제도적으로 봤을 때 어떨지 따져봐야지 개개인 별로 따지기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청구인측 참고인인 고경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이사 및 산부인과 전문의는 "낙태의 처벌은 낙태를 근절하는 효과는 없고 오히려 안전하지 않은 낙태로 이어져 여성에게 건강상의 문제를 발생시킬 위험이 크다"며 "낙태를 비범죄화함으로써 안전한 낙태방법이 도입되고 의료인의 교육·훈련이 가능해지므로, 낙태 비범죄화는 여성의 건강 및 모성 보호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밝혔다.
"낙태죄 금지는 공통 입법례"
반면 정부 측 참고인인 정현미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낙태 자체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거의 모든 입법례에서 공통적이며, 낙태의 자유는 예외적인 허용한계를 통해서 결정되므로, 낙태를 처벌하는 자기낙태죄 조항 자체는 위헌이라고 볼 수 없다"며 "낙태의 예외적인 허용한계를 규정하고 있는 모자보건법 제14조는 그 허용범위가 지나치게 좁으므로 임신 초기(임신 12주 이내)의 낙태를 허용하는 등 허용한계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A씨는 지난 2013년 11월부터 2015년 7월까지 69회에 걸쳐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했다는 등의 범죄사실(업무상승낙낙태 등)로 기소됐다. 이후 A씨는 낙태죄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했으나 기각되자 지난해 2월 위 조항들의 위헌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재, 2012년에 4대 4 합헌 결정
헌재는 2011년 11월 공개 변론을 거쳐 2012년 7월에도 자기낙태죄 조항 등에 대한 변론을 진행해 재판관 4:4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당시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태아는 성장 상태와 관계없이 생명권의 주체로서 보호를 받아야 하므로, 임신 후 몇 주가 지났는지를 기준으로 보호 정도를 달리할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위헌 의견을 밝힌 재판관들은 "태아는 생명의 유지와 성장을 전적으로 모체에 의존하고 있는 불완전한 생명이며, 임신과 출산은 모(母)의 책임으로 대부분이 이루어지므로, 임신 기간에 일정 시점까지는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고 봤다.
'낙태죄' 합헌에 대한 공개 변론일인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합헌과 위헌을 촉구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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