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파란 하늘과 초록 목초지의 색감이 교차된다. 그 위로 거대한 몸뚱이를 쭉 내빼 밀고 목을 꺾어 앞을 응시하는 젖소 한 마리가 있다. 핑크 플로이드의 5번째 앨범 ‘어톰 하트 마더(Atom Heart Mother·1970년)’의 표지(커버)가 된 사진이다. 보통의 음반들과 달리 밴드명도, 타이틀도 없던 이 한 장의 사진은 이후 핑크 플로이드를 ‘실험적 밴드’의 반열에 우뚝 세우는 지렛대가 된다.
핑크 플로이드의 5번째 앨범 ‘어톰 하트 마더(Atom Heart Mother·1970년)’의 표지. 사진/위키피디아
그들의 뒤에는 1960~80년대를 풍미한 예술가 집단, ‘힙노시스(Hipgnosis)’가 있었다. 새롭고 멋지다는 의미의 ‘힙(Hip)’과 영적이고 신비로운 ‘고대의 깨달음(Gnosis)’를 합한 그룹 이름처럼 그들은 오직 혁신과 도전만을 추구했다. LP(바이닐)에 자신들의 상상력을 물감처럼 뿌려대며 그들은 힙노시스적 예술 작품들을 주조해 나갔다.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책 ‘바이닐. 앨범. 커버. 아트’는 그런 그들의 앨범 커버 373장과 B컷 사진, 제작 과정 등을 한 번에 엮어낸 카탈로그다. 힙노시스가 밴드 음악사에 남긴 족적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게 했다.
힙노시스의 탄생은 몽상가 스톰 소거슨과 사진작가 오브리 파월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스톰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아이디어 뱅커였다. 파월은 그가 신박한 아이디어를 내면 그것을 사진기술로 구현해 내는 재주가 있었다. 두 사람은 1968년 핑크 플로이드의 초기작 ‘어 소서풀 오브 시크릿츠(A saucerful of Secrets)’의 작업을 계기로 1984년까지 폴 매카트니와 레드 제플린, 티 렉스, 스콜피온 등 기라성 같은 밴드들의 참신한 커버들을 만들어 냈다.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문(The Dark Side of the Moon). 사진/위키피디아
핑크 플로이드의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문(The Dark Side Of Moon·1973)’은 그들의 대표작이다. 검은색 배경에 흰 빛이 피라미드를 통과하고 그 빛은 다시 6개의 색으로 반사돼 퍼져 나간다. 단순하고도 명료한 이 표지를 두른 앨범은 이후 741주(1973~1988년) 동안 빌보드 차트에 머물며 핑크 플로이드와 힙노시스의 위대함을 알린 ‘세기의 걸작’이 됐다.
양복과 넥타이를 두른 사내 3명을 나열하며 초현실주의 작가 르네 마그리트를 연상시킨 클라크의 ‘헤드 룸(Head Room·1973)’, 공상 과학 소설 ‘유년기의 끝’에서 영감을 얻어 지구를 떠나는 아이들을 그린 레드 제플린의 ‘하우시스 오브 더 홀리(Houses Of The Holy·1973)’, 거래하는 두 사람 중 한 명이 불타고 있는 모습을 촬영한 핑크 플로이드의 ‘위시 유 어 히어(Wish You Were Here·1975)’. 이 모두는 그들의 손이 닿은, 그들에 의해 탄생한 ‘12인치의 정사각형 캔버스’였다.
레드 제플린의 ‘하우시스 오브 더 홀리(Houses Of The Holy)' 커버. 사진/위키피디아
각각의 작업 일화는 마치 단 편 영화 한 편을 감상하듯 흘러간다. 로큰롤 밴드 펌블의 커버 작업 후 예상과 다른 결과물을 받아 든 매니저로부터 핀잔을 듣던 이야기, 런던 북부의 한 들판에서 필름 단 두 통 만으로 ‘어톰 하트 마더’의 젖소를 찍은 이야기, 폴라로이드 수 백장의 이미지를 갖고 노는 실험이자 장난으로 멋스러운 커버를 만든 이야기 등이 쉼 없이 전개된다.
“전화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중략) 나는 쩔쩔 매며 스튜디오 저편의 스톰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펌블의 커버 작업 중 오프리 파월)”
“스톰과 나는 타버린 성냥과 동전, 손가락과 온갖 가능한 물건을 이용해 폴라로이드 사진을 조작했다. (중략) 대개 저속하고 유치했지만 즐거움을 더해갔고 우리는 모래밭에서 노는 아이들처럼 행복했다. 우리 모두는 그 결과가, 특히 우리가 한 작업물이 마음에 들었고, 나는 이것을 모아 커버로 쓰자고 요청했다.(음악가 피터 가브리엘)”
'바이닐. 앨범. 커버. 아트'. 자료/그책
작업 방식의 파격은 ‘힙노시스 혁신’의 모태였다. 책을 쓴 파월은 당시 그룹은 레코드사를 끼고 계약하지 않고 밴드와 직접 소통하는 방식을 채택했다고 술회한다. 밴드를 고객으로 대하기 보다는 ‘끈끈한 우정으로 지속되는 친구’처럼 대하면서 이들은 창의력을 최대치로 끌어낼 수 있었다. 힙노시스란 단어 자체도 그들과 친하게 지내던 핑크 플로이드의 시드 바레트가 하얀 문에 끄적인 낙서에서 탄생한 것이었다.
1980년대 후반 LP가 CD로 대체되고, MTV로 뮤직비디오가 강세를 보이면서 힙노시스의 커버 실험은 중단된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준 파괴적 창조는 오늘날 여전히 유효하다. 해리 피어스 등 오늘날 세계적 그래픽 디자이너들조차 따르고 배우니. 책 말미 피어스의 말대로 그들은 ‘LP 커버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경험을 공유했고, 문자 언어를 초월해 직접적이고 감정적으로 이야기 한 시각적 주술사’였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앨범 포장을 뜯고, 커버의 앞뒤를 찬찬히 훑어보길 좋아하는 이라면 눈을 쉽사리 떼지 못할 것이다. 한 세기를 주무른 뮤지션들, 그들의 뒤에 있던 힙노시스의 마술을 경험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