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8강전이 초래한 후폭풍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팀추월 경기임에도 김보름·박지우 선수가 노선영 선수보다 훨씬 앞서 결승선을 통과했고 김보름은 노선영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인터뷰가 시작이었다.
백철기 대표팀 감독과 김보름이 20일 진행한 기자회견은 화를 키웠다. 김보름은 기자회견에서 노선영에게 사과하지 않았고 백 감독은 “관중의 함성이 커서 소통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백 감독과 김보름은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됐다. 여기에 ‘레이스 순서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결정됐다’는 노선영의 인터뷰가 겹치며 주제가 진실공방으로, 감독과 선수들 간 개인적인 문제로 옮겨가는 분위기도 목격된다.
과연 그럴까. 개인적으로는 기자회견에서 백 감독과 김보름 좌우로 휑하게 비어있던 의자들이 눈에 띄었다. 사태를 앞장서서 수습해야 할 대한빙상경기연맹(빙상연맹) 관계자는 보이지 않았다. 순간 지난 2012년 8월1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 장면이 떠올랐다.
당시는 한국축구대표팀 박종우 선수가 런던올림픽 3·4위 전 승리를 확정지은 후 ‘독도는 우리땅’ 손팻말을 펼쳐 들었다가 메달을 박탈당할 뻔한 일이 논란이 됐다. 회의에서 민주통합당 최재천 의원은 대한체육회·대한축구협회 관계자들을 매섭게 몰아쳤다. “이 모든 책임은 문화체육관광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장관, 대한체육회장, 축구협회장이 져야 한다. 스포츠 외교와 영어가 부족한 사람들의 해프닝, 지금까지 스포츠 외교행정가를 키우지 못한 문제를 (덮고) 개인적인 해프닝으로 만들어 버린다. 사건을 지극히 축소시키고 동메달 혜택·병역문제로 치환시켜 한 사람을 바보 만들어 버린다.”
최 의원의 발언은 이번 사태와도 잘 들어맞는다. 김보름·박지우가 노선영을 내버려두고 앞으로 내달린 것은 결과다. 원인이자 본질은 이를 직·간접적으로 조장한 빙상연맹의 행태다. 노선영은 지난달 <스포츠조선> 인터뷰에서 “전명규 빙상연맹 부회장 주도로 이승훈·정재원·김보름 3명이 태릉이 아닌 한국체대에서 따로 훈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선영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김보름은 팀원들과 따로 훈련을 하면서, 연맹 관계자들은 이를 지시하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본인들만이 알 것이다.
최 의원은 2012년 박종우 사태 당시 “병역 문제만 도와주고 동메달 혜택만 주면 이 문제는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교훈을 얻지 않고 되돌아설 것이다. 그러고 우리는 잊어버릴거다”라고 일갈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이 문제를 개인 간 문제로, 일부 선수의 인성문제로 내버려둘 수 없는 이유다. 사태가 반복되는 걸 막으려면 감독과 선수가 아닌 빙상연맹에 집중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마침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김보름, 박지우 선수의 자격박탈과 적폐 빙상연맹의 엄중처벌을 청원합니다’ 청원이 사흘 만에 참여자 50만 명을 돌파했다. 청와대가 어떤 답을 내놓을지 주목해본다.
최한영 정경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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