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의구현과 적폐사법의 차이
2018-01-25 07:00:00 2018-01-25 07:00:00
전재경
서울대 글로벌환경경영전공 겸임교수
전직 대통령 두 분이 검찰과 법원에 "보복하지 말라"고 했다. 실제 말하고자 했던 대상은 현 정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관련한 '정치보복'으로 규정했다. 이 소식에 문재인 대통령은 '분노'했다. 과연 이 전 대통령 측은 국정원 특수활동비라는 쥐약을 복수라는 정치적 언사로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자신에 대한 법원의 재판을 정치보복이라 칭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재판에서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면서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이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혔으면 한다"고 말했다. 철저히 자신을 희생양으로 규정했다. 이면에는 재임 기간 이뤄진 그의 통치가 헌법과 법률에 한 치 벗어남이 없었다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박근혜정부에서 법원행정처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 관련 항소심 재판부의 동향을 청와대에 보고했고, 항소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오자 당시 우병우 민정수석은 "사법부의 진의가 왜곡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법원행정처에 전달하며 3권분립의 원칙을 유린했다. 절묘한 우연인지, 당시 대법원은 원 전 국정원장의 항소심 결과를 깨고 파기환송했다. 이 사건을 두고 일부 언론은 "대법원 판사들이 재판 결과를 놓고 청와대의 눈치를 살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최근에는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가 문건을 근거로 판사들에 대한 뒷조사 의혹을 제기하자, 다수 대법관들은 "청와대의 대법원 재판 영향력 행사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며 반박하기에 이르렀다.
 
공자는 <논어>에서 "내가 주공에게 예를 다하니 남들은 내가 아첨한다고 흉보더라"고 말씀했다. 검찰과 법원이 과거 자신들의 허물인 적폐를 청산한다며 나섰지만, 전직 대통령들의 눈에는 이것이 정치보복으로 비쳤나 보다. 법관들이 헌법과 양심에 따랐는지, 아니면 권력의 눈치를 봤는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두 전직 대통령은 자신을 겨눈 검찰과 법원의 칼날을 정치보복으로 규정했고, 두 정부에서도 검찰과 법원을 이용해 권력의 복수를 시도한 전력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명박정부만 하더라도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파란을 일으킨 창조한국당을 정치자금 수사와 판결로 궤멸시킨 전례가 있다.
 
2007년 대선에서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후보는 이명박 후보와 맞섰다. 문 후보는 낙선 후 이듬해 총선에 도전, 서울 은평구 을에 출마해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재오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그러자 검찰은 총선 후 창조한국당이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을 위반했다며 수사에 착수했다. 창조한국당은 총선에 즈음해 선거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채권(일명 당사랑채권)을 발행했었고, 이것이 불법 혐의를 받았다.  
 
이 일에 대해 당시 검찰과 법원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창조한국당이 채권을 발행하면서 이자약정을 체결하지 아니하여 이자 상당의 이득을 보았으므로 정치자금법을 위반하였고 문국현 대표는 정당의 대표자로서 책임을 진다"는 유죄 판결을 내렸다. 문 대표는 의원직을 상실했고 정치인에게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자격정지도 덧붙여졌다. 그리고 이재오 후보는 이듬해 보궐선거를 통해 지역구 복귀에 성공했다. 본래 정치자금법은 선거를 빌미로 뒷돈을 챙기는 법비(法匪)들을 처벌하려는 취지로 제정됐다. 하지만 당시 검찰과 법원은 법리를 왜곡해 정치적 경쟁자를 옥죄었다.
 
정당이 공개적으로 채권을 발행하고 투명하게 회계했으며 상환까지 실행했음에도, 이를 정치자금으로 판단하고 "그 이자를 떼먹었으니 정치자금법을 위반하였다"는 공소와 판결의 논리는 '정당한 법의 절차'(Due process)에 맞지 않는다. 마이너스 금리시대를 앞두고 검찰과 법원이 채권자도 요구하지 않았던 이자를 근거로 해서 한 정당을 궤멸시키고 복수한 것은 지금 봐도 궁색함의 극치다.
 
정의를 구현하여야 할 사법기관들이 궤변을 법리로 둔갑시켜 애매한 사람들을 처벌했으니 정의가 추락한 것을 불을 보듯 뻔하다. 적폐를 청산한다는데 양치기 소년처럼 정치보복이라는 말을 듣는 근원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 복수가 나쁜 것은 아니다. 복수는 원초적 정의다. 하지만 한 군소정당의 잔혹사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복수의 칼을 잘못 휘두르면 정의구현이 적폐사법으로 폄훼된다.

전재경 서울대 글로벌환경경영전공 겸임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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