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기자] 1996년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이후 그는 미국 생활을 했다. 앞으로 음악은 못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러다 어느날 한 악기상점에서 기타를 구매하게 되는 그는 다시 음악을 하는 자신과 마주한다. 그리고 1~2년 정도 흐른 후 ‘원맨’ 밴드로 작업한 앨범을 냈다. 자신의 이름을 건 타이틀이었고, 온통 ‘take(테이크)’란 이름이 곡명에 들어간 5집, 일명 ‘take 앨범’이었다.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창하고 있는 서태지의 모습. 사진/서태지컴퍼니·스포트라이트
2일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방탄소년단과의 콜라보레이션을 마친 그는 빨간 티셔츠를 입고 조용히 무대에 올라 그 앨범의 첫곡 ‘maya’를 연주했다. 투명 스크린 뒤에서 있는듯, 없는듯 홀로 기타를 잡고 있었다. 자연스레 팬들은 은퇴 이후 홀로 음반 작업을 했다던 그 시절을 떠올렸다. 빨간 조명 사이에서 연주하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고독해보이까지 했다.
짧았지만 무거웠던 maya의 연주는 이내 ‘take 1’의 웅장한 사운드로 이어졌다. “내가 말했잖아/ 너를 데려간다고/ 너의 아픔들은 이제 없을거라고” 한 폭의 추상화가 연상되는 조명들이 튀어오르면서 그의 음악들과 어우러졌다. 그리고 관객들은 가사를 따라부르며 그와 함께 하며 슬펐거나 기뻤던 과거의 추억과 감정들을 쏟아냈다.
솔로 앨범 이후의 곡들을 열창하는 서태지의 모습. 사진/서태지컴퍼니·스포트라이트
이후 이어진 솔로 활동들의 대표곡들에서도 ‘그의 삶’은 계속해서 연주됐다. ‘울트라매니아’, ‘탱크’, ‘오렌지’, ‘인터넷전쟁’ 등 6집의 곡들이 울려퍼질 땐 당시 서태지밴드의 일원이었던 락(최창록)을 스페셜게스트로 소개하기도 하고 직접 나서서 관객들이 슬램을 즐길 수 있는 판을 열어주며 2000년대 초반을 환기시키기도 했다.
‘로보트’, ‘제로’, ‘Outro’ 등으로 대표되는 7집 곡들이 흐를 때도 그 시절을 떠올리는 “난, 너를 향해 노래하네”란 메시지가 떴고, ‘틱탁’, ‘모아이’ 등으로 대표되는 8집 곡들을 연주할 때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웅장한 스케일로 2008년 서태지 심포니 무대가 재현되기도 했다.
“벌써 심포니를 한지 9년이 됐네요. 세월이 참 빨라요. 오늘 심포니 지휘를 맡아주신 분은 뮤지컬 ‘페스트’의 김성수 감독님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톨가(카쉬프)와는 스타일 좀 달라요. 좀 락킹하신 면이 있죠?”
9집의 ‘소격동’과 ‘크로스말로윈’에서는 조금 더 '락킹'한 새로운 스타일의 오케스트라 편곡 버전이 울려퍼졌다. 여전히 음악에서 ‘도전’과 ‘실험’을 추구하는 그의 모험이 현재 진행 중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서태지와 방탄소년단, 밴드 멤버들의 모습. 사진/서태지컴퍼니·스포트라이트
그렇게 저녁 9시40분쯤 버라이어티했던 25년간의 음악적 서사가 훑어졌다. 그 후 진행된 앙코르 순서에서도 ‘시대유감’과 ‘10월4일’, ‘난 알아요(심포니 버전)’ 등의 곡으로 ‘그의 삶’이 묻은 음악들을 느껴볼 수 있었다. 특히 시대유감이 나오기 전에 뜬 ‘1995 우린 목소리를 잃었지. 1996 되찾은 울림. 2017 그리고 오늘 두개의 달이 떠오르는 밤이야’이란 문구는 과거 ‘사전심의제도’ 폐지를 위해 함께 싸워온 그 자리의 모두를 응원하는 메시지였다.
“시대유감 이렇게 우렁차게 부를 수 있다니.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은 정말 대단합니다.”
이날의 마지막 엔딩 곡은 ‘마지막 축제’와 ‘우리들만의 추억’이었다. 마지막 축제가 끝난 후 건반을 치던 키보드 닥스킴이 “뭔가 아쉽네요. 태지형. 딱 하나만 더 하면 어떨까요?”라고 하자 “원해요?”라는 서태지. 곧 이어 방탄 소년단이 다시 나오고 모두가 ‘우리들만의 추억’을 과거 콘서트 버전으로 부르며 노란 종이비행기를 함께 날렸다.
“생각해봐, 우리는 25년 전의 약속을 소중히 지켜 냈기에 2017년 오늘을 함께 맞이하고 있는 거라구. 자.. 오늘 이런 축제의 밤 지금 이 순간 우리들의 만남이 또 다른 약속의 의미로 새겨지길 바라며”
“나의 소중한 친구, 바로 너희들에게 말해주고 싶어”
“‘아직도’ 사랑한다고..”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서태지의 데뷔 25주년 기념 공연이 펼쳐지던 무대에서 불꽃이 쏘아올려지고 있다. 사진/서태지컴퍼니·스포트라이트
이날은 9집 전국 투어 콘서트 이후로는 첫 단독 공연, 그리고 2015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출연 이후 첫 공연이었다. 총 3만5000여명의 관객들이 객석을 가득 메운 공연장에서는 감격에 젖어 눈시울을 붉이는 팬들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끝까지 자신의 음악인생을 들려주고 팬들에 대한 감사를 전하는 서태지, 그리고 그런 우리나라 최고 뮤지션을 지켜온 팬들이 함께 빚어낸 아름다운 공연이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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