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이 사회문제로 부각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청년실업의 근간에는 이른바 ‘문송’(문과라서 죄송합니다)과 ‘인구론’(인문계출신의 90%가 논다)이 자리하고 있다. 전국의 대학에서 쏟아져 나오는 5~6만 명의 인문계출신들은 취업시장에서만큼은 찬밥이다. 가장 고용을 많이 하는 기업체의 수요는 공대나 경영·경제계열에 몰려있다.
그러다보니 상당수가 전공·연령 따지지 않는 공무원시험에 매달리게 된다. 금년도 추경예산으로 선발하는 공무원 7·9급에 10만6000명이 응시해 247대 1을, 일부 9급 행정직은 최고 494.6대 1을 기록했다. 이와 같이 경쟁률을 올리는데 문과출신들이 한몫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젊은이들이 공무원에만 매달린다며 혀를 차고 있다. 문송이나 인구론과 같은 용어에서 나타나는 인문계출신 젊은이들의 좌절감이나 자괴감을 외면하면서 말이다. 그동안 우리는 청년실업자의 다수가 문과출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제대로 된 처방에는 소홀했다. 문사철(文史哲)은 문학·역사·철학의 줄임 말이지만 취업시장에서는 법경행(법학, 경영·경제, 행정), 의약이나 이공계 등의 실용학문과 대조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에서 문사철 인력을 배출하지만 이들을 특정해서 뽑는 직장은 거의 없다.
2015년도 전문대학 이상의 전체 졸업자 중 취업대상자 50만8000명의 67.5%가 취업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약계열 82.2% 공학계열 72.8%에 달하지만 인문계열만은 57.6%로 가장 낮다. 이들은 취업도 어렵지만 취업하더라도 보수나 근무여건이 취약하다. 취업 후 초기1년 근무비율인 ‘유지취업률'은 60%대에 불과하다. 81.3%인 교육계열이나 나머지 공학· 의약계열보다 훨씬 낮다. 근무 중 처우나 직업안정성이 떨어지므로 2~3년 근무비율은 더욱 낮다. 이들 문과생들의 학교생활 또한 만만치 않다. 역사학과 학생이 경제학을, 문학전공이 경영학을 부전공으로 하거나 타 전공의 자격증이나 스팩을 준비하고자 오히려 전공이상의 시간과 노력을 쏟는 '주객전도(主客顚倒)'가 일어난다. 뭔가 혼란스럽고 개운치 않은 모습이다.
사회적 시각도 싸늘하다. 이들을 ‘전공을 잘못 택한 사람’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이들은 대학산업과 입시위주경쟁의 희생자다. 왜곡 또는 존재감 없는 인력수급정책의 결과다. 수백 대 일의 취업경쟁률에 들러리를 서고 절대다수는 실패의 쓴맛을 본다. 그리고 왜 떨어졌는지조차 모른다. 이들에게 “잘 생각해보라”거나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며 위로하기도 민망하다.
문과생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행히도 최근 문사철의 중요성이 대두되고는 있다. 인문학강좌에 참석하는 '교양인'의 대열이 늘고 여전히 베스트셀러가 탄생하며 유명강사의 강연콘서트는 대중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이는 문사철의 소수서비스에 대한 대중적 소비에 불과하다. 문사철의 인재들이 곳곳에서 타 분야와 균형을 이루며 활동하는 게 중요하다.
마침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맞추어 이들의 역할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산업·정보화의 실용주의적 사회변혁과정에서 퇴색했던 인문학의 가치와 '쓰임새'를 4차 산업혁명의 시기에 되살려 보는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생산성과 효율성의 한계에서 벗어나 인본주의에 기초한 감성과 창의성을 부각시켜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인문학을 통해 각 기업이나 조직이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고 인간존중의 휴머니즘(humanism)에 기반한 협업과 융합을 촉진해야 한다. 문사철, 인문학은 하나의 덤이나 옵션이 아니다. 사회갈등의 해결이나 공동체적 우의를 실현하는 사회적 자산이기도 하다. 인문학적 인재의 사회적 활용을 늘려나감으로써 새로운 콘텐츠의 제공, 고객만족, 상생의 실현 그리고 창조적이고 신선한 가치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우선 공공분야와 대기업에서 문과생을 위한 일자리쿼터를 정하면 어떨까. 한때 르네상스의 원동력이었던 인문주의와 그 핵심인 문사철의 인재를 대규모 조직부터 활용하는 것이다. 하반기에 이루어질 대규모의 고용은 여전히 회계, 경영, 재무, 공학전공자를 대상으로 할 전망이다. 문사철 전공자를 배려한 다양한 인재채용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더불어 이들에 대한 ICT기술과 접목한 재교육이나 보완적 직업훈련, 창업 등을 촉진하는 게 필요하다.
이의준 벤처기업협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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