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자기업들이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다고 해서 혁신적인 기술 개발을 게을리 해선 안 됩니다.”
전자업계에서 30년간 종사해온 한 교수의 일침이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에 안주해 한 발 빠른 연구개발을 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때 전 세계를 호령했던 일본 전자기업들의 추락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일본 내 손꼽히는 기업들이 중국 자본에 맥없이 넘어가고 있다. 도시바는 세계 최초로 사람들 두 손에 휴대용 컴퓨터를 들려줬다. 2001년까지 글로벌 PC 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고, 낸드플래시 시장에서도 오랫동안 세계 2위를 지켰다. 하지만 지난해 미국 원전사업 실패로 인해 빚을 떠안고는 유일한 성장사업인 낸드플래시 사업을 시장에 내놨다. 이미 TV, 전자레인지, 드럼세탁기 사업 등은 중국 기업에 넘겨준 상태다.
샤프는 세계 최고 수준인 LCD(액정표시장치) 기술력에 취한 것이 패착이었다. 한국과 중화권 디스플레이 업체에 기술 우위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지난해 대만 홍하이 그룹에 넘어갔다. 이후 유일하게 일본계 기업으로 남아있는 재팬디스플레이(JDI)도 총 직원 수의 30% 수준을 감원하고, 중국·대만 자본을 끌어들이는 게 현실이다. 스마트폰용 디스플레이 사업이 LCD에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로 빠르게 바뀌는 흐름을 읽지 못한 탓이다. 앞서 D램 제조업체인 엘피다가 미국 마이크론에 흡수됐고, 소형가전과 배터리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산요는 중국 하이얼에 팔렸다.
세계 전자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일본 기업들의 몰락이 주는 교훈은 ‘자만심’이다. 일본의 전자 시장은 세계적인 전자기업들도 줄줄이 철수를 선언할 정도로 외산 무덤이다. 실제 일본의 전자기기 양판점을 방문해보니, 극히 일부 제품을 제외하고 외산 기기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일본 기업들은 기술력과 브랜드 가치에 의존하다 막상 시장변화에는 대응하지 못했다. 일본인들의 자국 전자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오히려 독이 된 셈이다.
이는 삼성전자와 LG전자에도 앞서가는 시장대응의 필요성에 경종을 울린다. 중국 전자기업들이 역량을 가파르게 끌어올리며 거세게 추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업계는 LCD 시장주도권이 이미 중국에 넘어갔고, 도시바가 중국 기업에 매각되면 반도체 기술격차도 빠르게 줄어들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한국과의 기술격차는 3년에서 5년.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확고한 지배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로 안주해서는 안 된다. 도시바와 샤프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왕해나 산업1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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