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국에서 각기 다른 두 편의 영화가 초대박 수익을 올리면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아프리카를 무대로 한 ‘중국판 람보’ 영화인 ‘전랑2(戰狼, 늑대전사2)와 중국내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다큐멘터리 ‘22’가 그것이다.
아프리카에 파병된 중국특수부대원이 자국민을 구출하기 위해 종횡무진하는 활약상을 그리고 있는 전랑2는 개봉 24일 만에 1억4000만명이 관람하고 약 7500억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등 중국영화사상 최고의 흥행수익을 연일 갱신하고 있다. 전랑2 덕분인지 이번 여름 아프리카로 떠나는 중국인들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이미 수십년 전부터 비동맹외교를 시작으로, 아프리카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와 진출을 아끼지 않은 덕분에 아프리카는 중국과 친숙하다. 중국 정부가 대놓고 한국과 일본 여행을 가로막고 있는 상황도 아프리카 여행 붐에 일조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22는 전랑2와는 전혀 다른 장르인데도 역시 이달 14일 개봉한 이래 중국 다큐영화사상 최고의 수익을 기록중이다. 다큐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적이 없는 중국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한 다큐영화가 소리 소문도 없이 갑자기 입소문을 타고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게다가 이 다큐 22는 우리에게도 조금 특별하게 다가오고 있다. 22란 숫자는 이 영화가 제작될 당시 중국에 생존해 있던 일본군 종군위안부의 숫자였다. 20만명에 이르는 일본군 위안부 숫자는 세월이 흐르면서 감독이 단편 다큐를 제작한 2012년 32명으로 줄어들었다가 이 영화를 촬영하기 시작할 때 22명이 됐다. 그리고 개봉을 앞둔 7월까지 9명이 생존해 있다가 또 다시 1명의 생존자가 개봉직전 세상을 떠나면서 ‘8’이 되었다.
22명 중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고 박차순 할머니 등 ‘조선인’이 셋이나 포함돼 있다. 특히 영화제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중국에서는 보기드문 크라우드펀딩 형식으로 제작 마케팅 비용을 조달하기도 하면서 한국 제작사와 공동제작됐다.
그런데 이 영화의 크레딧에는 한국이 공동제작자라는 사실이 빠졌다. ‘사드’ 때문이다. 한국과의 공동제작 사실이 중국 관객에게 알려져 봤자 흥행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거나 여전히 사드보복조치를 풀지 않고 있는 당국의 눈치를 봤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에서 ‘전랑2’와 ‘22’가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면 국내에서는 ‘군함도’가 반짝 흥행을 한 이후, 1980년 광주를 정면으로 다룬 ‘택시운전사’가 올해 첫 1000만 영화로 자리를 잡았다.
한 중 양국에서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영화들이 담고 있는 정치적 메시지는 분명하다. 전랑2가 내전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에서 전직 특수부대원이 ‘람보’가 되어 인질로 잡힌 자국민을 구출하고 세계를 구한다는 내용은 미국을 대체하는 ‘군사대국’ 중국을 연상시킨다. 중국 특수부대원의 종횡무진은 이 영화를 본 중국인들에게 중화민족에 대한 애국심과 자긍심을 심어줄 것이다.
시진핑(習近平)시대 이전, 중국의 최고지도자는 ‘도광양회’를 읖조리면서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르면서 때를 기다리는 것이 금과옥조였다. 시 주석 등장이후 중국은 거침없이 세계 무대에 나서고 있다. 한국에 대한 사드보복을 당연시하면서 미국을 압박하고 있는 것은 힘을 바탕으로 한 ‘유소작위’(有所作爲)이자 대국굴기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사드보복은 미국을 겨냥한 ‘중화대국’의 정치적 의지를 담고 있다. 사드배치 이전과 이후 한중관계는 확연하게 달라졌다. 만에 하나 우리정부가 사드배치를 철회한다고 하더라도 한중관계는 절대로 돈독했던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중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지금까지 양국이 경제적 밀월을 누려온 듯이 보였지만 사실은 한중 양국이 처한 현실과는 다른 왜곡된 현상이라는 점을 깨닫는 데서 새로운 한중관계 재정립이 가능할 것이다. 관계가 틀어져있는데도 양국이 수교 25주년 기념식을 성대하게 치른다면 잘못이다. 25년 전 노태우정부가 추진한 북방정책과 중국의 이념을 가리지 않겠다는 덩샤오핑의 실용정책의 합의가 한중수교였다면, 이제 과거 수천 년 간의 한중관계를 토대로 한 새로운 한중관계를 모색해야 할 때라는 이야기다.
대북제제 유엔결의안 2371호가 중국의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에도 북한이 생필품이나 유류난을 겪고 있다는 징후는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이 국경을 폐쇄하지 않는 한 중국의 대북제제는 형식적일 수 밖에 없다. 6.25는 중국에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었으며 아직도 그 전쟁은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시 주석의 1인 독주체제가 굳어지는 중국공산당 제 19차 당 대회를 앞두고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두 편의 영화 ‘전랑2’와 ‘22’는 중국에 대한 허상을 버리고 중국을 새롭게 들여다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정부가 바뀌었다고 해서 적폐청산이라는 명분으로 이념적 내전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 주변 강대국의 사소해 보이는 움직임 하나하나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다가 올 국운을 건 전쟁과 같은 돌발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서명수 슈퍼차이나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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