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항공서비스 패러다임의 변화 절실해"
황호원 항공대 교수 "최고의 서비스는 대접이 아닌 안전…명확한 법적지위 부여해야"
"승무원은 운항 중 사법경찰관 지위 가진 안전책임자"
2017-03-13 11:21:05 2017-03-13 11:32:21
지난해 연간 항공여객 1억명을 돌파하며 만개한 국내 항공업계는 규모만큼 늘어난 기내 위법행위에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지난해 연말 대한항공 기내 만취 난동 사태 이후 항공업계는 '보안'에 집중하고 있다. 유독 서비스 품질에 민감한 항공운송업 특성상 승객들의 잦은 갑질에도 눈치보기 바빴던 국내 항공사들도 잇따라 원칙 있는 강경 대응을 주장하며 모처럼 제 목소리를 냈다. 해외에 비해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이라는 업계 목소리를 외면하던 정부 역시 항공보안법 개정안을 준비하는 등 뒤늦게나마 대책안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이 역시 현장 일선에 있는 승무원들의 대응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세부내용이 없어, 업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항공보안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같은 곳을 바라보지만, 원활하지 못한 커뮤니케이션에 정부와 업계가 엇박자를 내고 있는 셈이다. 이에 국내 항공보안법 관련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황호원 항공보안포럼위원장 겸 항공우주정책·법학회 상임이사(한국항공대 교수)를 만나 그 배경과 대안을 들어봤다.
 
[뉴스토마토 정기종기자] 국내 대학에서 법학과 석사 과정을 마친 후 독일 마인츠 구텐베르크대학에서 형법학 석·박사를 취득한 황 교수는 후학 양성을 위해 한국항공대학교에 둥지를 틀었다. 학교 특성상 자연스럽게 항공분야 관련법 전문가가 된 그는 '21세기는 항공우주의 시대'라는 신념으로 항공법 등 제도의 뒷받침을 강조해왔다. 현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항공보안법과 관련된 강의를 대학 및 대학원에서 진행 중이다. 대한항공 기내 난동 이슈가 불거진 이후에는 항공보안법 개정안 입법 단계부터 업계 실정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쏟아내며 이름을 알린 항공보안포럼의 위원장과 한국항공우주정책·법학회 상임이사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국내 항공보안법 분야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황호원 항공대 교수는 국내 항공보안법 경쟁력 제고를 위해선 서비스에 편중된 인식의 변화가 선결과제라고 주장한다. 사진/황호원 교수
 
-먼저 항공보안포럼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달라.
 
국적 항공사 및 외항 항공사 등 항공운송사업자와 공항공사에서 항공보안 업무를 담당하는 책임자 및 실무자들과 함께 항공보안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항공보안 관련 정부 기관인 경찰과 교통안전공단 관계자를 비롯해 학계 교수와 변호사, 항공보안협회 등 국내에서 항공보안과 연관된 실무자들 대부분이 소속돼 있다. 항공보안과 관련된 법규 및 실무 등 제반 사안을 연구, 검토하고 그 중요성을 알리는 동시에, 정부와 업계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내 항공보안법 경쟁력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부족한 전문가 풀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항공법 분야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인재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에서 항공법을 전문적으로 강의하고 연구하는 곳은 한국항공대가 유일하다. 국토교통부에서 국제항공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을 개설해 운영 중이지만 수요에 비해 인재 배출은 미미한 수준이다. 국내 항공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한국도 국제적으로 법적 의견을 제시하는 등 유리하고 적합한 입법 정책을 강구할 필요성이 커진 것에 비하면 전문인력과 양성기관이 턱없이 부족하다.
 
국내에서 항공보안법 관련 강의를 보유한 교육기관은 황 교수가 재직 중인 한국항공대가 유일하다. 황 교수는 턱없이 부족한 국내 항공보안 전문 인력 육성 방안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황 교수가 항공대에서 항공보안법 수업을 진행 중이다. 사진/황호원 교수
 
-지난 2일 기내 위법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를 목적으로 한 항공보안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전반적인 평가는.
 
일반 형법상으로도 폭행의 경우 2년 이하, 상해시 7년 이하 징역형까지 부과되는데 기존 항공보안법의 경우 음주 후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위에 1000만원 이하 벌금형 수준이었다. 때문에 처벌 수위가 높아진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접근하면 결국 사후 조치에 불과하다. 형벌을 가중하겠다는 의미인데 담배 가격 인상 이후 흡연율이 크게 낮아지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난동을 제어하고 예방하는 효과가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위법 행위자를 항공기 착륙 이후 문 앞에서 바로 연행하는 식의 즉각적이고 철저한 처벌이 경각심을 심어주기에 효과적이다. 특히 개정안의 핵심이 별도의 예산과 인력에 대한 투자 없이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처벌 가중 수준에 그쳤다는 점은 아쉽다.

 
-정부 대책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뒷북만 친다는 업계 볼멘소리가 많다.
 
커뮤니케이션의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다. 국토교통부와 항공업계가 모여 의견을 공유하고 있지만 업계가 제 목소리를 내는 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국토부는 업계에 과태료를 부과하고, 이에 대한 이의마저 직접 검토한다. 갑과 을 관계다. 때문에 제3자가 연계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전문인력으로 구성된 항공보안 자문단 등의 연구기관을 포함한 산·학·관 구도의 장을 마련해 양자가 실질적으로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 필요가 있다.
 
-앞서 국회 입법안들이 대처 당사자인 항공사가 필요한 세부 지침이 아닌 처벌 강화에만 무게를 뒀다고 비판한 바 있다. 정부가 생각하는 항공 위법행위 예방과 업계가 필요시 하는 실질적 대처 방안을 포함해 향후 개선 방향에 대해 의견을 제시한다면.
 
사태에 대응하는 승무원들이 실질적으로 조치하는 세부 지침을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 현재 기준은 기내 난동 승객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정도 수준에 불과하다. 이를 세부 단계로 나눠 각 단계에 해당되는 조치를 취하고, 해당 조치의 법적 정당성을 부여해야 보다 적극적이고 확실한 대처가 가능해진다. 최근 논란이 됐던 테이저건 등 무기 사용 등의 절차도 법으로 명시해 승무원은 물론 승객들이 알게 할 필요가 있다. 객실 승무원은 운항 중 사법 경찰관으로서의 지위가 주어진다. 하지만 이는 착륙 이후 출입문이 열리기 직전까지다. 실제 범인을 인도하기까지 현실적 어려움이 뒤따른다. 이를 위한 범인 인도 장소와 절차 등을 확정할 필요가 있다. 음주 승객에 대한 탑승 거부에 관한 조항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 ‘사고 우려를 낼 만한 승객을 탑승 거부할 수 있다’는 조항은 유명무실하다. 기내 흡연이 법으로 금지된 것과 마찬가지로 음주와 관련된 명확한 법적 기준도 필요하다. 현행법상 항공사가 기내에서 제공하는 주류의 양에 제한이 없어 각 사별로 과하지 않은 양을 제공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데, 승객 개개인의 주량도 천차만별인 데다, 탑승 전에 음주를 하는 경우에 대한 변수 역시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항공보안법 개정을 이끌어낸 대한항공 만취 기내 난동 사건의 경우 고객 갑질 행태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소비자 인식도 문제지만 국내 항공사가 지나치게 고객 눈치를 보거나 저자세로 응대에 나선다는 지적도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법적 장치 마련을 통한 승무원 대처에 대한 기준 강화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결국 항공 서비스에 대한 패러다임이 변화해야 한다. 객실 승무원은 항공기의 꽃이 아닌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법 경찰관이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항공 서비스에 대한 기대치가 고객 응대에 편중돼 있다. 수년전까지만 해도 대형 항공사 승무원이 기내에서 고객과 대화할 때 무릎을 꿇고 응대할 정도였다. 가장 훌륭한 서비스는 대접이 아닌 안전과 평안함이다. 고객 응대 서비스는 그 다음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 같은 인식 변화를 위해서는 승객은 물론 승무원 스스로의 각성이 필요하다. 경찰이 범인을 잡을 때 반드시 물리력만으로 제압하진 않는다. 경찰의 법적 지위와 역할에 대해 분명히 알고있는 만큼 이를 기반으로 적극적인 행동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항공사도 승무원들이 각자의 지위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또 승무원 육성 관련 학과와 교육기관 역시 서비스 품질에 치우친 커리큘럼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국가적 차원에서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등이 균형을 맞춰야 한다.
 
정기종 기자 hareggu@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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