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 상승에 대한 우리 사회의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12일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6' 보고서에 따르면 노력을 통해 지위가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국민 중 21.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994년 60.1%였던 것에서 급락한 수치다. 특히 가계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는 30~40대의 경우 10명 중 7명이 계층 상승에 대해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세대의 계층 상승 가능성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였다. 국민 중 절반이 넘는 50.5%가 비관적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지난 1999년 기준 11.1%에 불과했던 수치가 17년 만에 4.5배 늘었다. 자녀세대의 계층 상승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국민은 31%에 불과했다.
우리 사회에서 계층 고착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는 조사 결과다. 우리 국민들은 언젠가부터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부가 사회에서의 계급을 결정한다는 '수저계급론'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흙수저'가 '금수저'가 되길 바라는 건 언감생심이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이미 옛말이 된지 오래다.
계층 상승에 대한 비관적인 신호는 사회 곳곳에서 감지된다. 통계청이 발표한 또 다른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OECD 35개 회원국 중 고등교육 이수자 비율이 45%로 가장 높았다. 하지만 이들이 선호하는 관리·전문·기술직 비율은 21.6%에 머물러 최하위 수준이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등 선진국에 비해 20% 포인트 이상 낮은 수치다. 우리 국민으로서는 교육을 통한 계층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 가운데 가계부채는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특히 주택 구입, 육아 등에 대한 수요가 높은 30~40대들이 빚더미에 앉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40대 가구의 70.1%가 금융권 대출을 받았고 30대 가구의 68.2%, 50대의 64.6%가 은행 등에 채무를 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미래를 제시하고, 희망을 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하지만 요즘 국가는 오히려 국민들의 비관론을 부추기고 있는 듯하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이 이를 보여준다. 천문학적인 돈을 벌고 떵떵거리면서 살려면 '대통령 백' 쯤은 있어야 하고, 청와대에서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 민정수석 쯤 되려면 본인은 아니더라도 장모 정도는 힘 있는 누군가와 친분이 있어야 한다. 또 일흔이 넘어서까지 퇴직 걱정 없이 고위직으로 일하려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아는 것을 모른다고 아무렇지 말할 수 있는 뻔뻔함도 갖춰야 한다. 이도 저도 안 되면 호스트바에라도 취업해 돈 많고 힘 있는 누님을 만나야 한다.
지금 국가는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국민의 희망을 짓뭉개고 있다. 국가와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계층 상승에 대한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요즘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 1순위가 공무원이라고 한다. 과거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 1순위였던 대통령, 의사 등의 직업은 후순위로 밀렸다. 고용 불안정에 대한 우려가 부각되고 있는 사회 현실이 반영된 결과다. 머지않아 '비선실세'라는 듣도 보도 못한 직업이 우리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 1순위가 될까 두렵다.
정해욱 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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