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경차, 주택시장 그리고 대형사고
박관종 건설부동산부장
2016-08-04 08:00:00 2016-08-04 08:00:00
무게 620kg, 배기량 796cc, 시내 연비 24.1km/L… 꼬마자동차 '티코'의 탄생은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에 파란을 일으켰다. 1991년 등장한 이 녀석, 아니 경차의 조상 '티코'는 국내 경승용차 시장의 포문을 활짝 열었다. 그것도 당대 최고(지금도 역시)의 여배우 김혜수와 함께 화려하게.
 
CF에는 김혜수와 이영범이 출연했다. 어렵풋한 기역을 더듬어 보면 이들은 당시 매주 일요일 아침 방영됐던 국민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에서 통통 튀는 신세대 부부로 출연하며 큰 인기를 누렸다. 아마도 대우자동차는 그들의 이미지를 '티코'에 담아 젊은층을 공략하려 했던 것 같다.
 
'도시는 좁아도 티코의 길은 넓다'는 캐치프레이즈, 김혜수가 조수석에서 내리는 남편 이영범에게 "손님 차비 주고 가셔야죠~"라는 대사, 이어진 이영범의 볼키스 장면이 화제를 낳으며 CF는 그야말로 대박을 친다.
 
김우중 회장은 한동안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서울역 앞 대우빌딩까지 출퇴근용으로 이용하기도 했고, 1992년에는 고 김수환 추기경이 타고 다니는 것이 알려지면서 인기가 더 치솟았다.
 
대우자동차가 '김수환 추기경이 티코를 타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티코를 구입했다'는 신문광고를 냈다가 신도들이 거세게 항의해 3일 만에 광고를 중단한 일화도 있다.
 
껌을 밟으면 차가 멈춘다느니, 앞차 기름 냄새만 맡아도 주행이 가능하다느니 하는 비아냥 섞인 유머도 유행했지만 아무튼'티코'는 국민차라 불리며 국내외 시장에서 10년간 무려 100만대나 팔려 나갔다.
 
이내 현대차와 기아차도 경쟁에 뛰어들면서 경차 전성시대를 이끌었고, 금융위기로 혼란을 겪던 2008년에는 800cc로 제한됐던 경차 배기량이 1000cc 미만으로 완화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후 최근 몇 년 동안 저유가 시대를 맞아 판매가 주춤했다가 올해 다시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 중이다. 1월부터 5월까지의 7만2151대, 준준형 6만9978대 보다 2000대 이상 많이 팔렸다. 다른 차들 다 받는 개별소비세 인하 혜택도 없었다. 1998년 마티즈 시절 단 한차례 연간 판매량이 앞선 기록이 있었을 뿐 이런 분위기는 보기 드믄 경우란다.
 
이런 배경에는 품질 상승, 실속형 소비자 증가 등 여려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시장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처럼 경제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결국 불안한 경제 사정과 경차 판매량 증가는 궤를 같이 한다는 것이다.
 
생계를 위해 차는 꼭 필요한데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 한 사람들이 한숨 한번 크게 쉬고 구입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아무래도 경차는 대형 교통사고에 노출되기 쉽다. 실제로 지난 3년 동안 경차 사고가 해마다 1만여 건씩 늘고 있다는 무서운 통계가 나왔다. 특히 다른 차량에 비해 대형 사고가 많아 수리비와 의료비에 드는 비용도 늘고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성능이 좋아지니 과속을 하게 되고 그래서 사고가 더 잦아졌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모습은 작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주택시장 활황 속 실수요자들과 닮은 구석이 많다. 전월세가 덩달아 오르는 판에 주거비용은 감당하기 힘들고, 몸 누일 곳은 꼭 필요한 사람들이 한숨 한번 크게 쉬고 아파트 구매를 결정하는 모습. 경제적 결핍으로 인해 찾아온 호황이란 점 역시 마찬가지다.
 
상반기 전국에서 무려 21만2658가구 아파트가 분양됐다. 하반기에는 21만2828가구가 예정돼 있다. 그러는 사이 돈을 빌려주는 환경과 성능(?)도 더 좋아져 대출 불어나는 속도는 위험수위다.
 
6월 기준 주택담보대출은 500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5월 대비 4조8000억원이 증가한 수치인데다, 올 들어 최대치다. 주담대 잔액이 500조원을 넘어선 것도 사상 처음이다. 집단대출 잔액 역시 1분기 115조5000억원으로 지난해 말 110조3000억원 보다 5조2000억원이 늘었다. 무서운 질주다.
 
한쪽에서는 새아파트 입주가 쏟아지는 2~3년 후에 역전세난이 발발할 것이란 경고를 쏟아놓고 있다. 한숨으로 집을 샀던 사람들의 한숨이 더 커지게 생겼다. 현실로 찾아온다면 서민들에겐 큰 사고가 아닐 수 없다.
 
이 역시 안전 운행을 하지 않으면 대형사고를 몰고 오는 경차와 많이 닮지 않았나?
 
박관종 건설부장
pkj31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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