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기인 150년 전 영국 브래드포드시에서는 200개가 넘는 직물공장이 가동되고 있었다. 환경보호에 대한 인식이 없었고 오염물질 배출 규제도 만들어지기 전이라 공장 주변 환경은 열악했다. 굴뚝에서 나오는 매연과 공장에서 흘려보내는 폐수는 환경오염을 유발했다. 도시 주민의 건강은 자연히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브래드포드시에서 태어난 아이들 중 30% 정도만 15살을 넘길 수 있었다. 아이들의 평균수명은 20살에 불과했다.
다니엘 샐트도 그때 당시 아들과 함께 그곳에서 직물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샐트는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을 보고 생각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쾌적한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샐트는 종업원들을 위해 신도시를 만들고 공장을 이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샐트는 브래드포드시 외각에 ‘샐타이어’라는 자급자족형 도시를 건설했다. 저수지를 만들어 깨끗한 식수를 공급했고 병원, 학교, 기숙사 등 종업원을 위한 사회기반시설을 만들었다. 종업원들은 샐타이어시에서 다양한 공공서비스 혜택을 누렸고 개선된 환경 속에서 일할 수 있었다. 샐트가 사망한 1876년 샐타이어시는 종업원과 그 가족으로 이루어진 인구 3500명이 넘는 기업 도시로 변모했다.
윤리경영의 의미
샐타이어시는 윤리경영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윤리경영은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경영 과정에서 윤리성을 중요한 의사결정 기준으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윤리경영의 목적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완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일반적으로 경제적 책임, 법적 책임, 윤리적 책임, 자선적 책임 등 네 가지로 구성된다.
기업은 경제활동을 통해 이윤과 고용을 창출해야 할뿐만 아니라 정해진 법망 내에서 공정한 경쟁을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소비자, 근로자, 투자자 등이 요구하는 윤리기준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나아가 경영활동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자선활동도 적극적으로 진행하여 사회 공동의 이익 생산에도 힘써야 한다.
윤리경영은 모든 경영요소에 포함되는 개념으로 기업 활동 전반에 흐르는 원칙이다. 임직원의 부정부패 척결운동이나 사회공헌 활동 등 윤리성 제고를 위한 기업의 개별적인 활동은 윤리경영에 포함되는 부분이지 동일시되는 전체가 아니다. 윤리경영을 위해서는 기획 단계에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이 가져올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영향에 대한 고려가 담겨야 한다. 인력을 관리할 때는 공정한 인사가 이루어져야 하며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재무관리는 투명하게 이루어져 투자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윤리경영과 함께 기업에게 요구되는 경영방식으로 준법경영이 있다. 두 가지가 동일시되는 경우가 있지만 서로 다른 개념이다. 준법경영은 기업의 책임을 법적 틀 내로 한정하여 규정하는 반면 윤리경영은 법의 테두리를 넘어 입법 취지와 사회 통념까지도 고려한다.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도 사회의 윤리적 기준에 어긋난다면 준법경영이라 볼 수 있을지라도 윤리경영이라고는 할 수 없다. 두 개념을 아울러 준법·윤리경영이라 한다.
기업의 적극적인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사회의 목소리
기업의 경영관리는 리스크 관리 같은 소극적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될 처지에 내몰렸다. 기업의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그에 걸맞은 책임감을 질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제 준법·윤리경영을 통한 사회적 책임 확보는 기업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핵심 전제가 됐다. 소비자들은 법을 준수하지 않고 비윤리적 행태를 보이는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다.
제일기획이 2013년에 실시한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응답자의 90.2%가 ‘기업은 윤리경영 실천 의무가 있다’고 답했다. 71.2%의 응답자가 ‘비윤리적인 기업 제품을 구매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답했으며 54.3%는 ‘조금 비싸더라도 윤리적인 기업 제품을 구매한다’고 응답했다. 이제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위해서는 준법·윤리경영이 기업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실제 비윤리적 경영으로 시장의 신뢰를 잃어 파산한 기업도 있다. 미국 최대 에너지 기업이었던 엔론(Enron)은 2001년 15억 달러 규모의 분식회계, 비윤리적 로비활동, 임직원의 부정부패가 드러나며 이듬해 해체됐다. 이밖에도 소규모 장거리전화서비스 재판매회사로 출발해 60여개 이상의 회사를 통합하며 성장한 텔레콤 회사인 월드콤(Worldcom)도 분식회계의 결과로 파산했다. 파산 규모는 1039억 달러에 달해 당시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파산 신청으로 남았다.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에게 돌아와 1800억 달러(208조 35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발생했다.
준법·윤리경영의 효과와 존슨앤존슨사의 사례
준법·윤리경영은 시장에서 기업의 신뢰를 구축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경영기법이다. 준법·윤리경영은 소비자, 주주, 거래처, 종업원, 투자자를 포함해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와의 관계를 건강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경제활동은 교환이라는 점에서 상호신뢰는 불안감이 형성되는 것을 막아 불필요한 비용이 초래되는 것을 방지한다.
소비자는 준법·윤리경영을 하는 기업의 제품을 믿고 구매할 수 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가 깊어지면 소비자는 기꺼이 기업의 정직성을 믿고 자신의 정보를 맡긴다. 협력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준법·윤리경영를 통한 신뢰감 형성은 기업 간 거래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기회주의를 억제해 거래비용을 줄인다. 준법·윤리경영은 기업 내부적으로도 도움이 된다. 종업원의 주인의식을 고취시키며 도덕적 해이를 통제하여 부패가 일어날 가능성이 차단된다.
1982년 미국 존슨앤존슨(Johnson & Jonhson)사의 타이레놀 사건은 준법?윤리경영의 효과를 잘 보여주며 최초의 기업 윤리경영 사례로 꼽힌다. 당시 누군가가 미국 존슨앤존슨에서 생산한 타이레놀의 캡슐을 열고 청산가리를 넣어둔 일이 있었다. 범인은 청산가리가 든 타이레놀 캡슐을 다시 선반 위에 올려놓았고 이를 복용해 8명이 사망했다.
미국 식품의약청(FDA)이 제조상의 결함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밝혔으나 존슨앤존슨은 총 2억 4000만 달러 규모의 비용을 들여 시중에 배포된 타이레놀을 전량 수거했다. 사고 발생 후 1주일 이내 수거된 100만 병의 타이레놀에 대해 자체조사를 실시했다. 독극물이 들어있는 제품은 시카고에서 거둬들인 75정 뿐임을 밝혔고 범인 검거를 위해 10만 달러의 현상금도 거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범인이 검거되고 사건이 종료된 후 경영컨설팅 회사와 일부 경영진은 타이레놀 브랜드가 시장에서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고 보고 포기할 것을 권유했다. 존슨앤존슨은 신뢰도 조사를 했고 결과는 기업 이미지가 크게 손상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사고 이후 존슨앤존슨이 취했던 적극적인 대처 방안은 소비자들에게 신뢰감을 심어주었다. 타이레놀의 시장 점유율은 사건 발생 6개월 만에 32%를 달성해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유엔글로벌콤팩트와 페어플레이어클럽
세계화로 다국적기업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국제기구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제적 표준화를 시도하고 있다. 1991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은 기업이 준수해야 할 ‘글로벌 콤팩트’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세계화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적극 나서자는 취지였다. 이후 2000년 7월 유엔글로벌콤팩트(UN Global Compact, UNGC)가 뉴욕 유엔본부에서 발족됐다.
협약은 인권, 노동, 환경, 반부패 등 4개 범주에 대한 10대 원칙을 제시했다. 법적인 구속력이 없지만 회원 기업은 해당 원칙을 채택하고 규범화할 것을 요구받는다. 2013년 5월 기준으로 145개국 7000여 기업을 포함하여 학계, 노동계, NGO 등 총 1만여 회원단체가 가입했다.
국내에서도 유엔글로벌콤팩트가 제시한 세계적 기준에 발맞추기 위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2월 18일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는 롯데호텔에서 ‘페어플레이 반부패 서약 선포식’을 개최했다. 페어플레이어클럽(Fair Player Club, FPC)의 1차년도 주요 성과가 소개됐고 KT, LG전자, CJ, 한국관광공사, 한국철도시설공단 등 60개 민간·공기업이 유엔 기준에 맞춘 반부패·윤리경영을 서약했다.
페어플레이어클럽은 세계은행과 지멘스 청렴이니셔티브가 후원하는 전세계 24개 반부패 프로젝트 중 하나다. 정부와 기업이 협력하여 공정하고 깨끗한 시장 환경 및 사업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페어플레이어클럽은 선포식에서 1차년도에 자동차, 전자정보통신, 기계, 철도, 해외건설, 의료기기 산업 협회와 협력을 통해 기업의 반부패 인식 제고 활동 및 교육을 진행했다고 발표했다. 남은 2년 동안 지역별(차년), 국가별(3차년) 특성을 살린 반부패 교육, 조사연구, 인식 제고 활동 등을 통해 준법·윤리경영 문화를 확산시킨다는 계획이다.
페어플레이 서약서에는 ▲최고경영진의 청렴한 기업문화 조성 장려 ▲기업의 사업운영에 관련된 반부패 리스크 관리 노력 ▲임직원의 준법?윤리경영 역량강화를 위한 노력 ▲이해관계자들과 협력 및 투명하고 공정한 사업 활동 수행 ▲공정하고 깨끗한 비즈니스 환경 조성 노력 등의 내용이 담겼다.
임홍재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사무총장은 “앞으로 더 많은 기업들이 페어플레이 정신에 기반한 준법?윤리경영을 실천하기 바란다.”며 “깨끗하고 공정한 비즈니스를 위한 대화와 협력의 장인 페어플레이어클럽 프로젝트에 정부, 기업, 시민사회, 언론 등 이해관계자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바란다.”고 말했다.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는 오는 14일 프레스센터에서 ‘준법·윤리경영 페어플레이어클럽 세미나’를 개최한다. 지역별 특성을 살린 사업을 전개하는 2차년도 첫 세미나로 서울시 소재 공기업 및 민간 기업을 대상으로 윤리경영에 관한 국내외 동향을 소개한다. 또한 반부패 사례 공유를 통해 기업의 반부패 역량 강화를 지원한다.
지난 2월 18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한국협회는 ‘페어플레이(Fair Play) 반부패 서약 선포식’을 열었다. 이관섭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을 비롯한 참석자가 준법·윤리경영을 약속하는 서약서를 들고 있다. 사진/KSRN
정지형 KSRN 기자
편집 KSRN집행위원회(www.ksrn.org)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