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법률을 미리 알고 잘못을 해도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는 상황이죠. 반면에 소비자는 실제로 피해를 입고도 보상 받을 수 있는 법이 없어요. 억울한 소비자가 아직도 너무 많아요.”
박명희 사단법인 ‘소비자와함께’ 상임공동대표(사진)가 진단한 한국 소비자문제의 현주소다. 소비자와함께는 2014년 11월에 출범해 올해 활동 3년 차인, IT와 신뢰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신소비자 운동을 표방하는 단체이다. 작년 출범 1주년을 맞아 시공간의 제약 없이 소비자가 상시 활동할 수 있는 소비자 포털 ‘WITH’를 오픈·운영하는 등 소비자와함께는 젊은 소비자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서울고법 기자실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지지하는 변호사·교수 모임’이 기자회견을 열어 국내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회견에 동석한 박 대표에게 현안에 대해 물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왜 도입해야 하나.
-우리나라 경제는 성장 위주의 경제였기 때문에 ‘기업이 살아야 소비자가 산다’고 이야기하며 20여 년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대한 논의가 유보되었다. 그러나 이번 옥시 사건을 계기로 기업들에 경종을 울리자는 의미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자는 데에 전문가들이 의견을 모았다. 우리나라 소비자 운동을 보면 이슈가 터지고 관련 단체들이 한두 번 성명서를 내고, 시간이 지나면 소비자들이 다시 구매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소비자도 각성해야 하지만 근본적으로 기업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여태까지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대해 소비자가 소송을 남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 도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제안에는 합리적인 차원에서 생명과 관련된 부분들, 식품, 약품, 세제 등 생활화학용품과 같이 국민의 건강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제조물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담겨있다.
▲그 외에 소비자 권익을 위해 시급히 도입해야 할 법안을 꼽자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앞서 제조물책임법(Product Liability, PL 법)이 보완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제조물의 결함에 있어 사람의 행위가 아닌 제조물 그 자체만 문제가 된다. 입증의 책임도 소비자에게 있다. 피해자가 제품의 위해성이 있고 그로 인해 피해를 보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데 제품에 관한 정보나 제조 과정을 모르는 소비자가 개연적으로 심증이 있다고 해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것은 어려운 현실이다. 우선 PL 법이 보완되어 잘잘못을 명확히 하고 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이 이어져야 한다. 지금은 기업의 보상 정도가 미미해 약간의 보상을 해줘도 더 많은 사람을 상대로 판매를 계속해 이익을 보기 때문에 옥시 사건 같은 사건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소비자와함께는 옥시 사건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나타났다가 금세 사라지는 사건을 많이 봤다. 그래서 소비자와함께는 ‘소비자이슈큐레이션 CHIC’라는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이 사건을 잊지 않도록 6개월이건 1년이건 관련 기사를 계속 내보낼 계획이다. 또한 소비자가 유통매장에서 옥시 제품을 파는지 파파라치처럼 감시하는 캠페인도 계속할 계획이다. 근본적인 제도를 바꾸는 동시에 소비자들의 지속적이고 실직적인 노력이 함께 필요하다.
▲한국 소비자 운동의 현황과 문제점은 무엇인가.
-이번 옥시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소비자 단체가 법보다 빠르게 기업과 정부의 왓치독(watch dog,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하는데 소비자들의 요구나 필요를 충분히 대표하고 있냐는 반성이 필요하다. 또한 소비자 단체가 열심히 해도 우리나라 경제규모라거나 생활수준에 비해 피해보상제도는 매우 허술하다. 소비자보호법은 많지만 실제로 피해를 보고 나면 보상받을 수 있는 법이 없다. 사소한 것에 대한 피해 보상제도는 잘 되어있다고 하지만 의료사고같이 정말 심각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상받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소비자 운동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기업 중심적인 프레임에 갇혀있다는 것이다. 생산과정에서는 ‘소비자가 시장의 주인이다’, ‘손님이 왕이다’라고 말하지만 소비자에게 법은 멀기만 한 상황이다. 기업은 이윤을 위해서 기업 중심적인 관점을 가진다고 하지만 정부만큼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뚜렷한 관점을 가져야 하고 전문가들도 양심적으로 소비자 편에 서주는 게 중요하다. 이건 사실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 해당하는 문제다.
▲블랙컨슈머 때문에 소비자 운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있는 것 같다
-블랙컨슈머는 범죄자지 소비자가 아니다. 블랙컨슈머 때문에 모든 소비자가 악의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처럼 비춰지는데, 이것 역시 기업 중심적인 프레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 돈의 가치를 바로 알고 손해를 봤다면 내 권리와 돈을 되찾아야 하는데 그걸 체면 구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이상한 논리이다. 오히려 열성적인 소비자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신고하고 신문이나 SNS를 통해 알리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나머지 소비자들을 대신해 싸워준다고 생각하는 게 소비자 중심적인 관점에서 바르게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소비자의 권익에 대한 교육이 부족한 것 같다
소비자의 권리나 정보를 어떻게 분별하는지에 대한 기능적인 교육도 중요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소비자로서 생각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현재 소비자단체들이 주창해서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소비자 권익에 대한 내용이 조금 늘긴 했지만 체감교육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유아원 같은 곳에서 소비를 배울 때 내가 가진 돈만큼의 가치를 선택하는 게 뭔지, 판매자가 나한테 제공해야 하는 정보가 뭔지, 권리를 침해당하면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소비자 교육법이 따로 있지는 않다. 앞으로 바꿔나가야 할 부분이다.
▲여태까지 소비자와함께와 소비자 포털 WITH의 성과는 무엇인가
-소비자 포털 WITH는 기존의 소비자 단체들의 진부해진 활동에서 벗어나 젊은 소비자를 중심으로 새로운 패던의 소비자 운동을 시작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었다. 기존의 방법같이 오프라인에서 활동하고 직접 감시하러 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급변하는 시대에 맞춰 IT를 기반으로 하는 활동을 시작한 것 자체가 큰 성과이다. 소비자이슈큐레이션 CHIC의 경우 하루에 수십 개씩 올라오는 소비자 관련 이슈를 내부의 다양한 나이로 구성된 소비자정보선별위원회가 선별해 재가공해 유통하고 있다. 이 내용을 포털뿐만 아니라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서도 공유하는데 페이지 구독자가 많이 올라갔다. 이슈 큐레이팅 활동이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드는 활동인데 기대했던 것보다 반응이 좋다. 앞으로는 홍보에 좀 더 신경을 써서 영향력을 키우는 데 주력하려고 한다.
▲소비자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소비자들의 소비 행동은 개인의 이익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여태까지의 자유경제사회에서는 개인이 원하기 때문에 소비하고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며 생산·판매한다는 논리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논리를 따르다 보면 사회 전체에 미치는 악영향이 엄청나다. 요즘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일어나는 것처럼 소비자도 사회적 책임을 고려할 줄 알아야 한다. 소비자도 자신의 소비에 대한 영향력에 대해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동시에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NGO에 대한 책임감이나 의무감이 생겨야 한다. 스웨덴 같은 국가에서는 시민들의 NGO에 대한 책임감이 있다. 스웨덴 사람들은 자기가 지지하는 NGO에 평생회원이 되면 단체가 활동하기 위한 금전적 지원도 같이한다. 아프리카의 어려운 이웃돕기 같은 운동에는 많이 참여하지만 우리 생활에 밀착되어있는 소비자 운동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어 안타깝다.
▲앞으로 우리나라 소비자 운동의 목표는
-소비자가 바라는, 소비자 운동을 통해 만들어가려는 세상은 소비자가 노력하지 않아도 속지 않고 피해 보지 않는 세상이다. 하지만 개별 소비자가 제품이나 상품에 대한 모든 부담을 질 수 없으므로 소비자 단체가 존재하는 것이다. 소비자 단체가 소비자들의 필요와 요구를 대표하고 개별 소비자들은 걱정 없이 다른 노력을 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소비자 운동의 목표다.
이윤 KSRN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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