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호기자] 지점 축소, 인력 감원 상시화, 핀테크 등장과 같은 변화는 이미 닥쳐왔다. 고연봉·안정성·복지혜택의 3박자를 고루 갖춘 금융권 직업군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금융권에서는 인력 구조조정이나 비용절감과 같은 몸집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본격적인 수술은 이제 시작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금융권 노사가 모두 변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금융당국과 사측을 중심으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추진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새로운 도전인 인터넷전문은행이나 핀테크 업체들은 지금 은행같은 많은 인력의 고용이나 고임금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경쟁을 위해서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과연봉제 도입을 통해 업무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것만으로 금융산업이 경쟁력을 가지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내부 구성원은 물론 조직 차원에서 전면적인 혁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기술과 금융이 접목한 '핀테크'야 말로 전통적인 금융권의 위상이 무너지고 있는 분야다. 가까운 미래에 핀테크 전문 기업이 은행을 재치고 금융업을 잠식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해외 금융기관들은 유망 IT기술이나 자원을 보유한 핀테크 기업에 대한 인수·지분투자·파트너십·육성 등 다양한 모델을 활용해 자체 경쟁력을 확보하며 핀테크 기업 성장에 대응하고 있다.
웰스파고, 바클레이즈 등은 핀테크 스타트업을 선정해 재무적 투자뿐 아니라 업무공간 제공, 멘토링 등 비재무적 지원을 함께 제공해 이들의 성장을 돕고 추후 사업성이 우수한 기술은 자체 서비스에 적용하는 ‘육성 프로그램’ 운영 중이다.
골드만삭스의 경우 설립 이후 146년간 주로 부유층 및 대기업만 대상으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던 사업모델에서 벗어나 2013년부터 핀테크 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실시간 빅데이터 분석기술 개발 업체 켄쇼(Kensho)의 엔지니어들을 트레이딩 부서로 초대, 2주간 머물며 골드만삭스의 트레이딩 플랫폼을 자유롭게 활용하도록 허용하는 등 IT기업의 일하는 방식, 사고방식, 문화 등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강서진 KB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핀테크 시대에 금융기관이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기존 서비스에 적용하는 차원을 넘어 골드만삭스와 같이 기술에 대한 사고, 관점, 문화를 획기적으로 전환해 기업 자체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 직원 스스로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대형 은행에서는 인터넷전문은행 파견 신청 모집에 모집인원의 10배가 모이기도 했다. 기존 은행 시스템에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영역으로 도전하고자 하는 직원들의 의지가 상당한 것으로 해석된다. 파견직은 3~4년내 은행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만큼 개인이나 은행 조직으로서도 새로운 분야의 경험이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 은행 관계자는 "현재 은행원이 하는 단순 업무는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 등 전산이 대체하고 지금 내 일자리가 없어질 수 있다는 걱정이 커졌다는 점 등이 반영된 것"이라며 "40대 초반 지원자도 많은데 그만큼 위기감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금융시장이 급격히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점 영업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지점 한계를 넘어 핀테크와 빅데이터, 자산운용 전문 인력이 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한·국민·KEB하나·우리은행 등 시중은행들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학원 수강료나 시험 응시료 등 비용 지원, 인터넷·모바일 학습콘텐츠 제공은 기본이다. 주요 시험 직전 유명 강사를 초빙하거나 사내 학습모임 활성화를 지원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저성장, 저금리 시대를 맞아 조직이 점점 몸집을 줄이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자격증 취득, 교육이수 등 자기계발 필요성을 느끼는 직원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 금융권의 영업은 지점 영업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핀테크나 빅데이터를 활용한 영업으로 변하고 있고 자산운용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스스로 생존하기 힘든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금융사들의 호봉제 임금 체계는 성장 국면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저성장 국면에서는 큰 부담이 된다"며 "CEO와 임원들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를 위해 직원 및 인프라, 서비스 개발 등에 어떻게 투자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호 기자 sun1265@etomato.com
◇핀테크 지원센터가 개최한 '핀테크 데모데이(Demo-day)'에서 한 핀테크 업체 직원이 핀테크를 활용한 전자서명 시연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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