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리조나 주 유마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는 4학년 학생 31명이 아이패드로 수업을 받는다. 애플이 8개월 전 전교생에게 무상으로 제공한 아이패드는 이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학습 도구가 됐다. 수업시간에 아이패드로 '각도'에 대한 발표를 하고, '분수'에 대한 디지털북을 모아 읽고 발표하며, '물의 순환과정'에 대한 동영상을 만든다. 학생들이 아이패드를 사용해 시험을 보면 교사는 순식간에 채점 결과를 받아 분석한다.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은 선생님으로부터 "집중하라"는 실시간 메시지를 받기도 한다. 게임용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높다고 생각해 태블릿의 도입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한 담임교사는 "수업의 질을 높이고, 학생들에게 학습 동기를 부여한다"며 긍정적인 평가로 입장을 선회했다.
지난해 미국 29개 주에 위치한 114개의 초중고교가 애플의 '파트너 학교'로 선정됐다. 전반적으로 교육환경이 열악한 학교들이다. 선정된 학교의 학생 중 96%가 미 정부로부터 급식을 지원받는 저소득층일 정도로 실업률이 높고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지역에 속한 학교들이다. 애플은 이 114개 학교가 IT를 활용한 교육과정을 확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애플은 이 학교에 다니는 모든 학생에게 무상으로 아이패드를 제공했다. 교사에게는 아이패드와 맥북 컴퓨터를 지급하고 각 교실에는 애플 TV를 설치했다. 몇몇 학교에는 무선인터넷 시설도 마련해 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애플이 저소득층 학생의 컴퓨터 교육에 실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애플은 지난 2014년 지원금으로 1억달러를 약속하면서 기술지원을 통해 학생들 사이의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태블릿 PC 등 디지털 기기를 통해 학생들이 배움의 과정을 즐기고 학습의 효과를 높이는 데 의의가 있음을 밝혔다. 애플의 이같은 지원은 2013년부터 실시된 미국 정부의 디지털교육 프로그램인 '커넥트에드(ConnectEd)'의 일환이기도 하다. 오바마 정부의 커넥트에드는 40% 수준이었던 미국 초중고의 컴퓨터 교육을 2018년까지 99%로 끌어 올린다는 목표 아래 여러 기업과 기관의 참여로 진행되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 주 유마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아이무비’ 앱으로 각자 시를 해석해 보고 있다. 사진/애플
디지털 교육 위해 물적·인적자원 지원
애플은 물품 지원에 그치지 않고 인적 자원을 투입해 IT 교육 과정 정착을 돕고 있다. 각 학교에 매년 17일간 직원을 파견하는데, 그들은 '학습전문가'라고 불리는 전직 교사들이다. 학습전문가는 워크숍을 통해 교사들에게 아이패드와 맥북, 애플 TV 활용법을 알려준다. 교사들은 수업에 쓸 수 있는 앱을 추천받고 사용법을 익힌다. 워크숍을 통해 기기 사용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했다는 애리조나주의 한 초등학교 담임교사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게 되면, (아이패드를) 수업에 활용해 보고 싶은 의욕이 상승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초등학교 교사는 "워크샵 내용이 (현직 교사에게)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워크샵 참석 후, 농촌이라는 지역사회 특성을 반영해 고대 그리스의 아르키데메스가 발명한 나선식 펌프를 주제로 아이패드 시뮬레이션 앱을 이용한 수업을 준비하기도 했다.
애플은 후원 사업 진행에 걸림돌이 되는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임원 후원제'도 도입했다. 유마의 서벌크럽초등학교의 경우 애플의 인터넷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부문을 받고 있는 에디 큐 선임부사장이 후원을 맡았다. 이 학교 학생들 대부분은 집에 인터넷이 없어 가정 학습이 어려운 상태였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큐 선임부사장은 미 통신회사 AT&T에 무선인터넷 지원 보조금을 신청했다. 비정부기관인 러닝엑셀러레이터의 파트너인 다니엘 오웬은 이러한 전폭적인 지원이 "매우 이례적인 경우"라고 평가했다.
지원 대상 학교의 IT 기반 마련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인터넷 연결이 잘 되지 않거나 와이파이가 없는 학교가 많기 때문이다. 아이패드 등 제품을 전달하기 전에 기술직원을 보내 IT 기반에 대한 철저한 조사도 진행한다. 알라스카의 한 시골 학교의 경우 느린 위성인터넷에 의지하고 있었지만 애플이 교육당국과 함께 와이파이를 구축해주며 인터넷 환경이 크게 개선됐다. 무선인터넷은 교육환경에도 도움이 됐는데, 청각장애를 겪으며 고립된 교육을 받았던 학생도 페이스타임과 아이패드를 통해 또래와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앱 활용한 창의적인 학습 가능성 공유
애플은 홈페이지를 통해 IT 기기를 이용하며 창의적인 방식으로 학습하는 다양한 사례도 공유하고 있다. 미저리 주 세인트루이스의 리버뷰가든고등학교 학생인 대본은 동영상 제작 앱을 통해 자신이 다니는 학교와 지역사회에 대한 오해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내레이션은 선생님과 동기들이 맡았다. 데본은 영상을 제작함으로써 자신의 시각을 대중에게 알릴 수 있게 됐다며 "현실 세계에 뛰어든 느낌"이라고 말했다.
애리조나 주 유마에서 누네즈 교사의 언어학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차고밴드(GarageBand)'라는 앱으로 리듬을 익히고 제작, 녹음까지 완성한다. 세인트 루이스의 웨스트뷰 중학교에 다니는 타이렐은 3D 지도인 '플라이오버(Flyover)'로 바하마 지역의 섬들을 가상으로 여행한 후, '키노트(Keynote)'를 이용해 멀티미디어 발표 자료를 만들었다. 알라스카 주의 난왈레크에 사는 세버란은 파일럿이 되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 수학 공부의 중요성을 깨닫고 '아이엑스엘(IXL)'이나 '노트(Notes)' 등으로 각도나 곱셈표를 익히고 있다.
컴퓨터 교육의 부정적 이미지 쇄신위한 노력
애플의 자선 활동은 컴퓨터에 의존한 교육이 학습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시각을 바꾸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디지털 교육에 투자를 많이 한 학교 학생들의 시험 성적이 크게 오르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OECD에 따르면 태블릿이나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는 학생은 오히려 성적이 저조하다. 엘리엇 솔로웨이 미시건대 교육대학 교수는 수업 시간에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이 시험 점수를 올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교과과정 및 커리큘럼의 개선이 뒤따르지 않는 한 컴퓨터를 사용한다고 학습 효과가 상승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부정적인 연구결과에도 애플이 학교에 무상으로 제품을 지원하며 IT 교육 기반을 강화하는 것은 교육자들과 학생의 지지를 얻어 컴퓨터 교육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바꾸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의 변화가 결국 디지털 교육기기와 애플의 입지를 넓힐 것이라는 분석이다.
교육기술 시장 고전 면할 돌파구 될까
일부에서는 애플의 이러한 자선적 행보가 교육기기 및 교육 소프트웨어 시장을 노리는 상업적인 의도에 근거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교육기기 시장은 최근 학교와 정부의 교육 정책에 힘입어 성장하는 추세다. 또 소비자들은 어릴 때 친숙해진 제품을 계속 사용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학교에 IT 기기를 공급하면 잠재적인 소비자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고가정책으로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는 애플이 교육기술(Edtech) 시장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 구글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며 교육기술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지난해 구글은 200달러대의 저가 노트북인 크롬북으로 하드웨어 시장의 52%를 점유했다. 2012년 크롬북의 미국 학교 내 사용률은 1%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과 비교하면 초고속 성장이다. 필 매독스 퓨처소스의 애널리스트는 크롬북의 성장 속도에 대해 "전례 없는 경우"라고 평가했다. 안드로이드의 시장 점유율까지 합하면 구글의 몫은 훨씬 더 커진다. 반면 애플은 최근 3년간 미국 시장 점유율이 52%에서 24%로 반 이상 감소했다. 글로벌 시장 점유율도 16%로 3위에 불과하다. 43%로 선두를 달리는 마이크로소프트와 38%의 점유율을 보이는 2위 구글과 비교해서도 크게 뒤쳐진다.
애플의 적극적인 교육 투자가 갖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든 이 같은 활동은 저소득층의 교육 환경을 개선하고 제품 및 브랜드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홍보하는 길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장기적으로는 시장을 확대하는 기반을 마련하고 시장에서 독특한 위치를 확보하는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신지선 미국공인회계사(AICPA)·국제경제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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