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세퓨 가습기 살균제' 성분 유해성심사 조작 의혹
법정 서식 요구하는 '주요용도'가 '주요농도'로 둔갑
2016-05-11 17:46:52 2016-05-12 00:24:39
[뉴스토마토 이우찬기자] 세퓨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가 수입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법정 서식이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부 책임에 대한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화학물질 유해성심사 신청에서 가장 핵심적 신고사항인 '주요용도''주요농도'로 둔갑한 가운데 정부는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관보에 고시했다.
 

11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 송기호 국제통상위원장은 10일 환경부에게서 제출받은 정보공개청구 내용을 언론에 공개했다. 송 변호사는 "세퓨 가습기 살균제 유독물질에 대한 2003년 수입 유해성심사가 서류조작으로 진행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2003년 세퓨가 국립환경연구원에 제출한 화학물질 유해성심사 신청서를 보면 첨부서류 가운데 '주요농도'라는 표현이 나온다. 하지만 법정 서식에는 '주요용도'라고 돼 있고 화학물질을 어디에 쓸지 명시해야 했다. 유해성심사를 신청하는 업체는 법정 서식이 요구하는 대로 '주요용도'를 기재해야 된다.

 

2003년 세퓨가 국립환경연구원에 제출한 유해성심사 신청서 첨부서류 목록에 '주요농도'라고 쓰여 있다. 오른쪽 법정 서식에는 '주용용도'라고 돼 있다. 자료/송기호 변호사
 

유해성심사 신청서 서식은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시행규칙을 따르는 법이 정한 서식이다. 송 변호사에 따르면 화학물질 유해성심사 신청서에 '주요용도'를 표시하도록 한 규정은 30년 가까이 법이 명시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주요용도''주요농도'로 바뀐 채 심사가 진행됐다

 

송 변호사는 "유해성심사 신청서를 처리한 국가 공무원이 이를 몰랐다고 말한다면 국가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라면서 "국가가 '주요용도'가 아니고 '주요농도'로 조작된 것을 알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핵심적인 사항인 '주요용도'가 누락된 것은 결국 PGH가 흡입독성 시험을 거치지 않은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2003년 당시 세퓨가 제출한 첨부문서에는 덴마크 케톡스사()가 이 물질을 홍보하는 자료로 추정되는 내용이 있다.

 

케톡스사는 PGH에 대해 '양계장에서 소독''농산물 수확 후 소독''식품의 보존''고무·목재 보존' 등에 쓰인다고 적고 있다.

 

환경부는 그동안 PGH의 사용 용도가 작업장에서 고무, 목재, 직물 등의 보존을 위한 항균제이기 때문에 환경에 직접 노출돼 사용되지 않아 흡입독성 시험을 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그러나 서식에 '주요용도'를 요구하는 내용은 없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송기호 변호사가 11일 서울 서초동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환경부 화학물질 유해성심사 신청서를 들어보이고 있다.송 변호사는 이날 환경부의 세퓨 가습기살균제 유해성 심사가 서류 조작으로 불법 진행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사진/뉴스1

 

송 변호사는 "케톡스사가 자사 제품을 설명하면서 여러 용처 가운데 하나를 예로 든 고무와 목재의 보존 항균으로 설명한 부분을 환경부는 마치 고무와 목재 항균제로 용도가 신청됐기 때문에 흡입독성 시험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퓨가 2003년 유해성심사 신청서에 첨부한 2001년 유럽연합 자료 MSDS(Material safety data sheet)에도 '먹었을 때''피부에 발랐을 때''돌연변이' 등 여러 독성 자료들은 있지만 흡입독성 자료는 없다.

 

송 변호사는 "2003년에 세퓨 유독물질인 PGH 유해성심사 신청 당시 흡입독성 자료는 처음부터 제출될 수 없었다고 보인다"며 "이게 불법적인 유해성심사 진행의 원인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1997년 환경부가 유공(SK케미칼)에 제공한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 화학물질심사 결과통보서도 처음 공개됐다. 이에 따르면 환경부는 '국민 보건 및 환경보전을 위해 조치할 사항'에 대해 '없음'이라고 썼다. PHMG는 100명 이상의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옥시 살균제 성분이다.

 

또 환경부는 제조(수입) 제한사항에서 "사용과정에서 건강이나 환경에 위해를 미치거나 미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면 해당 물질의 제조·수입·판매·사용을 금지할 수 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환경부는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사용 등을 감시해야 했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는 이를 시정하라고 요구할 법적 권한이 있었던 것이다.

 

송 변호사는 "환경부는 그동안 유공 측이 카페트 항균제 용도로 신청해 심사를 통과시켰고 가습기 살균제로 쓰이는 단계에 대해서는 알 수도 없고 그 이후는 공산품안전관리법 소관이라면서 가습기 살균제 안전심사 대상 공산품도 아니었다 해명해왔다"고 꼬집었다.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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