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과 늑대를 키우는 주인이 있었다. 어느 날 늑대는 주인에게 청했다. "이 좁은 우리에 혼자 있자니 심심해 죽을 지경입니다. 저 들판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떼들과 어울려 놀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주인이 말했다. "너의 심정은 이해하나 네가 저 양떼를 잡아먹지 말라는 보장을 어떻게 하느냐." 늑대는 우리에 갇혀 있는 동안 자신의 본성이 양처럼 순해졌다고 주인을 설득했다. 오히려 양을 다른 짐승들로부터 지켜줄 수 있다고도 말했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주인은 늑대를 가둔 울타리를 거두었다. 늑대는 양들의 곁으로 다가가 유유자적 놀았다. 양들은 불안했지만 주인의 눈이 늑대를 늘 감시하고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안심했다. 하지만 주인의 눈은 온종일 늑대에 붙어 있을 수는 없었다. 한울타리에서 양들과 지내던 늑대는 밤이 이슥해지자 양들을 하나 둘 잡아먹기 시작했다. 주인은 후회했다.
해림 한정선 작가의 우화를 각색해 본 이 우화에서 주인은 왜 울타리를 허물어 버리는 결정을 내렸을까
. 늑대의 자유만을 생각했을 뿐 양들의 불안과 생존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늑대의 자발성을 주인이 과대평가했다고도 할 수도 있다
. 좀 더 비판적인 사람은 주인이 본질적으로 늑대의 편이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 양과 늑대는 한 우리에 키우는 법이 아니다
. 이 울타리는 수 많은 양떼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며 법과 제도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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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사회책임투자(SRI)에서도 이 울타리는 필요하다. 그런데 4.13 총선을 앞두고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에서 이 울타리를 치는 문제에 대해 4당에 정책 질문서를 보내고 받은 답변 내용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서 필자는 집권 여당이 양과 늑대를 한 우리에 키우는 주인의 우를 범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또 야당의 맏형인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울타리를 만들자는 담론에는 동의하고는 있지만 어떤 답변에서는 제대로 알고 있는지 갸우뚱하게 만든다.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는 사회적 책임과 관련해 활동하고 있는 13개 비영리기관의 순수협의체로, 이 결과를 지난 3월 2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사회적 책임의 법제화, 4당에게 길을 묻다'는 주제로 열린 '사회적 책임(CSR·SRI) 10+1 정책토론회'에서 공개하기도 했다.
CSR과 SRI 촉진과 관련된 10개의 질문과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7개항의 세부질문으로 구성-의 특별질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모두 법제화와 제도화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CSR 국가전략 수립을 필두로 기업의 ESG 정보공개, 지속가능성보고서 발간, 기업 이사회 내 CSR 위원회 설치, 모든 공적연기금의 ESG 고려와 공시, 국민연금 내 독립적인 사회책임투자위원회 설치 등이 주요한 질문들이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지만 여당과 야당은 극명하게 갈렸다. 새누리당은 총 17개 사항에 대한 의무화 혹은 제도화에 모두 반대했다. 2012년 대선 때와 비교하면 전면 후퇴다. 이에 반해 정의당은 모두 찬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배구조 관련한 1개의 사항에 대해서만 입장보류하고 나머지는 찬성했다. 국민의당은 5개 사항 조건부 찬성, 1개 사항 반대했을 뿐 나머지는 찬성의견을 보내왔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새누리당의 일관된 반대 이유다. '기업의 자발성'과 '시장의 성숙'에만 지나치게 의존하고 '기업의 비용과 부담 증가'만을 내세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17개 문항을 이 논리로 모두 반대했다. 우상숭배 수준이다. 그 정도가 지나쳐 정부의 추진정책과의 엇박자도 드러났다.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시 국민연금의 코드 채택'은 차치하고라도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 자체에 대해서도 반대한다는 답변이 대표적이다. "기업의 자율적 경영권을 침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결권을 무기로 배당확대를 요구할 가능성"이 그 이유다. 그런데 스튜어드십 코드는 정부 부처인 금융위원회에서 현재 추진하고 있는 사안이다.
또 국민연금기금은 이미 '국내 주식 배당 의결권 행사지침'을 통과시켜 기업이 합리적인 배당정책을 수립하지 않거나 정책에 따른 배당을 하지 않으면 3단계에 걸쳐 배당 확대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무슨 희극적 상황인가. 지속가능성보고서 발간과 관련해서도 그렇다. 보고서 발간이 늘었다는 통계를 제시하고 있지만 정작 투자자에게 중요한 상장기업의 발간은 줄고 있다. ESG 정보공개 의무화 반대는 글로벌적인 조류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유럽의회는 500인 이상 고용한 기업 및 그룹사로 하여금 ESG 관련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하는 법안을 2014년 4월에 압도적으로 통과시켜 2017년에는 최초 보고가 나온다.
문제는 유럽의회의 이 법안이 공급망으로 엮어 있는 우리나라 기업들에게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그리고 정의당은 거의 대부분 찬성 의견을 표명했음에도 그 답변 내용은 부실했다. 그나마 국민의당이 상대적으로 충실했다. 야3당 모두 CSR과 SRI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고 정책 또한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자발성과 시장의 성숙만을 기다리는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옐리네크(Georg Jellinek)는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말했다. 필자도 그렇다고 믿는다. 거미줄보다 더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히고 설킨 인간 사회를 모두 법으로 규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법 보다는 도덕 혹은 윤리의 기반 아래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사회가 더 좋다. 하지만 이 자율성과 자발성에 대한 믿음은 자주 배신을 당한다.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들이 CSR과 SRI와 관련한 기존의 자발적 이니셔티브들을 하나 하나 법제화 시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법제화가 만능은 아니다. 하지만 시스템적이고 인프라적 성격의 법은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과거로 회귀할 수 없는 현재를 만들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CSR과 SRI가 거부할 수 없는 세계적 조류이기 때문에 이러한 법 제정은 경제의 체질을 튼튼하게 하는 '좋은 규제'에 속한다. 또 4당이 각각 표방하고 있는 경제정책인 일자리 성장, 더불어 성장, 공정성장, 정의로운 경제도 이 CSR과 SRI가 밑거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CSR과 SRI의 법제화는 양과 늑대의 입장 모두를 고려해 상생하고 모두가 행복해 지는 울타리를 치는 일과 같다. 20대 국회에서 선량들에게 이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이유다. 노파심에서 첨언하면 양과 늑대의 비유는 비유일 뿐이니 오해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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