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책임)‘세계 소비자권리의 날’…“항생제를 메뉴에서 추방하자”
영국 항생제 대책위원회, 항생제 내성 확산으로 전 세계서 매년 70만명 사망
패스트푸드업계서 사용하는 육류에 항생제 제한 등 소비자운동 활성화 필요
2016-03-14 06:01:00 2016-03-14 06:01:00

315일은 세계 소비자권리의 날이다. 국제소비자기구(CI)는 올해 소비자운동 주제로 항생제를 메뉴에서 추방하자를 제안한 바 있다. 날로 늘어나는 육류 소비와 함께 항생제가 우리 식탁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에 뉴욕 타임즈는 미국 식품의약청(FDA)의 내부문서를 인용해 가축에 사용하는 항생제 30종 가운데 18개가 사람에게도 효력을 미치는 항생제였다고 보도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항생제를 사용한 가축을 먹은 사람 역시 해당 항생제에 내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한국의 상황은 더 나쁘다. 비슷한 시기 농림축산검역본부 관계자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국내 축산업계 항생제 사용량이 축산 선진국의 2배가량 된다고 밝혔다. 그 후로 특별히 개선된 사항은 없어 보인다.

 

현재 축산업에 쓰이는 항생제 종류는 사람에게 사용되는 항생제 종류의 절반 정도이다. 가축에게는 항생제가 제한적으로 허용되지만 늘어난 육류 수요로 인해 가축의 빠른 성장을 위해 항생제가 오남용되고 있다. 좁은 축사에서 많은 가축을 키우는 우리나라에서는 항생제를 더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항생제 이후 시대를 맞게 될 것

해마다 미국에서는 항생제 내성으로 인해 약 23000명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 항생제 대책위원회는 지난 2014년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항생제 내성 확산으로 전 세계에서 매년 70만 명이 사망하고 이로 인한 암 발병위험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국제소비자기구는 2030년 축산업에 사용되는 항생제의 양은 2010년보다 3분의 2가량 늘어 105600톤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예측대로면 항생제 내성으로 인한 사망자나 관련 질병 피해가 지금보다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영국 항생제 대책위원회는 항생제 내성 확산과 관련해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되면, 2050년까지 항생제 내성 확산에 따른 세계 각국의 대응 비용만 연간 63조 파운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항생제 내성 확산으로 슈퍼바이러스 감염 위험이 커지면서 사회경제적 비용이 더 늘어날 수 있다. 항생제 내성 확산이란 단일 요인으로 세계 경제가 3.5% 후퇴할 것이란 전망도 나와 있다. 앞서 세계보건기구(WHO) 후쿠다 케이지 사무차장은 긴급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전 세계는 단순한 감염만으로 사망하는 일명 항생제 이후 시대(post-antibiotic era)를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초국적 패스트푸드기업들의 부적절한 대응

축산업 분야 항생제 사용에 대한 본격적 반대의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항생제 내성에 관한 대중의 인식은 높아지는 추세다. 지난해 WHO가 중국을 비롯한 12개국에서 진행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가축에게 사용되는 항생제의 양을 줄여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73%에 달한다. 국제소비자기구 또한 2016년 소비자 운동 주제로 항생제를 메뉴에서 추방하자를 선정했다.

 

국제소비자기구는 지난해 11월 전 세계에서 10만개 매장을 운영하는 맥도날드, 서브웨이, KFC 등 초국적 패스트푸드 기업들에게 항생제 사용 저감에 즉각 동참할 것을 요청했다. 신속한 예방적 대응 없이는 2050년에 10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리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제기된 현시점에서 초국적 패스트푸트 기업들을 움직이지 않고서는 어떠한 해법도 무용지물이란 판단에서이다.

 

전 세계적으로 100개국에서 약 36000개 매장을 운영 중인 맥도날드는 미국에서는 2017년까지 캐나다에서는 2018년까지 항생제 사용을 줄인 닭을 사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서브웨이는 전 세계적으로 111개국에서 44589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 미국에서만 닭은 2016, 칠면조 2019, 그리고 돼지와 소는 2025년까지 항생제 사용을 줄이겠다는 약속을 내어놓았다.

 

KFC는 가장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전 세계 115개국 19420개 매장 가운데서 반응을 보인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초국적 패스트푸드업계의 선두 주자인 맥도날드서브웨이KFC의 미온적 반응에 대해 국제소비자기구 아맨다 롱 단체장은 세계적인 항생제 내성 확산 위협에 대한 한심할 정도로 부적절한 대응이라고 비난했다.

 

국제표준화기구(ISO) 소비자정책위 안전분과 문은숙 의장은 초국적 패스트푸드업계의 변화 없이는 항생제 확산 문제에 관한 해법을 도출하기 힘들다그나마 북미지역에 대해서 만이라도 이루어진 한정된 약속을 소비자운동과 공론화 과정을 통해 앞으로 세계 전역에서 시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벨상 상금의 10, 경도상의 부활

국제소비자기구 외에도 영국 국립과학예술재단(NESTA)이 항생제 내성 확산 상황을 우려하며 문제 해결에 동참했다. 영국 항생제 대책 위원회의 2014년 보고서 이후,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주도로 NESTA에서 경도상을 부활시킨 것이다.

 

1707년 영국 해군 함대 21척 중 4척이 짙은 안개 탓에 추측항법으로 귀환하다 암초에 부딪혀 침몰해 1647명이 수장되었다. 7년 뒤 영국 의회는 경도를 결정하는 방법을 제안하는 사람에게 최대 2만 파운드의 상금을 내걸었다. 이것이 경도상의 시작이다. 과거 인류 최대 난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도입된 경도상이 300년 만에 다시 제정되어 항생제 내성 확산이란 난제의 해답을 찾고 있다. 항생제 내성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에게는 1000만 파운드(170억 원)의 상금이 지급된다. 노벨상 상금(16억 원)10배가 넘는 금액이다.

 

경도상 제정 이후 미국, 독일, 영국 연구진이 항생체의 내성 가능성을 크게 낮출 수 있는 항생물질인 테익소박틴(teixobactin)을 발견했다. 테익소박틴을 이용한 신약이 개발되기까지는 10~20억 달러의 연구자금이 필요하며 적어도 5년 이상의 소요될 전망이다.

 

항생제 내성에 대한 한국 소비자들의 인식이 높아지길

신약개발로 항생제 내성 확산을 저지할 수 있을 가능성은 생겼지만 실제로 신약 개발에 투자할 제약회사가 나타날지, 있다면 언제쯤 그 약이 개발돼 전 세계에 보급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신약 개발만을 기다리기에는 그 손실을 예측하기 힘들다.

 

국내에서 항생제 부작용을 우려한 무항생제 육류는 생활협동조합 유료 회원들에게만 판매되고 있다. 아이쿱산본율목소비자생협 축산코너 관계자는 무항생제 육류를 찾는 소비자들은 대부분 아이가 있는 젊은 엄마들이라며 주 소비자층이 젊은 부부이기 때문에 SNS 홍보나 입소문 전파를 거쳐 앞으로 이 문제가 많은 소비자들의 관심사안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문은숙 의장은 “1988년 콩나물 농약사건부터 2008년 광우병 집회까지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식품 안전 문제에 관해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했지만 축산업계의 항생제 오남용 문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낮은 편이라며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할 다양한 수단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윤 KSRN기자

편집 KSRN편집위원회(www.ksr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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