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요격을 목적으로 하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한국과 미국이 본격 추진하면서 한·미·일과 북·중·러가 대립하는 신냉전 구도가 뚜렷해지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동북아 군비경쟁에 불을 지핌으로써 본말이 전도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중 관계에도 악재가 되어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는 점차 ‘액션’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고리 모르굴로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9일(현지시간) 박노벽 주러 한국대사를 불러 “한·미 양국이 사드의 한국 배치에 관한 협상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고 러시아 외무부가 밝혔다. 러시아가 한국 대사까지 초치해 경고 메시지를 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중국은 7일 한·미가 사드 협의를 시작한다고 선언한 직후 김장수 주중 한국대사를 불러 불만을 나타냈다. 중국 외교부는 “류전민 부부장이 김 대사를 긴급히 초치해 한국이 한·미가 정식으로 사드의 한국 배치 논의를 시작한다고 선포한 데 대해 항의했다”며 "중국의 원칙적인 입장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김 대사가 지난해 3월 말 부임한 이후 중국 외교부에 불려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 외교부는 미국에도 관련 입장을 전했다고 밝혔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가 8일 사설을 통해 밝힌 입장은 중국과 러시아가 왜 사드를 반대하는지 명확히 보여줬다. <환구시보>는 한국 국방부의 발표를 소개한 후 "한국의 결정은 동북아 안보정세가 더욱 복잡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전략적 단견”이라고 비판했다. 신문은 또 “군사전문가 대다수는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는 중국 미사일 동향의 감시능력을 구축한다는 의미로 보고 있다"며 중국의 안보에 잠재적인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설은 "사드의 한국 배치는 동북아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각종 요소 간의 악성 상호작용에 마침표를 찍지도 못하는데다 한국을 잠재적으로 통제력을 상실하는 중심적인 위치에 처하게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아랑곳없이 한·미는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를 기회로 사드를 밀어붙이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미 <CBS> 방송 인터뷰에서 “북한 (미사일)이 미군 시설이나 미국인들에 도달할 수 있는 어떤 가능성도 막기 위해 미사일방어 능력 향상에 관해 한국과 최초로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드 논의를 정상 차원에서 공식화하는 의미의 발언이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까지 9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사드 배치 논의를 지지한다고 말하면서 사드 배치는 한·미·일 3국의 공감대 속에 이뤄지는 것임을 보여줬다.
한·미는 장경수 국방부 정책기획관과 로버트 헤드룬드 한미연합사령부 기획참모부장이 대표를 맡는 국장급 공동실무단을 구성해 이달 중으로 첫 회의를 가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무단은 주한미군 사드 배치 장소와 비용 등을 협의한다. 장소로는 미군기지가 있는 경기도 평택이나 대구, 전북 군산 등이 거론된다. 비용은 ‘미국은 전개와 운영유지 비용을 분담하고 한국은 부지와 기반시설을 담당한다’는 원칙에 따라 협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논의가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한·미 국방부 장관이 5월 말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대화)에서 사드 배치 결정을 공식 발표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되는 사드 배치에 중·러가 계속 반발해 대립이 심화되면 핵·미사일 해결이 요원해질뿐더러, 중·러의 군사력 강화만 불러올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그 갈등에서 피해를 가장 많이 받는 나라는 한국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한국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이 무역에서 불이익을 주거나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 보복성 조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한국에 경제적 타격을 미치는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 성공을 자축하는 대규모 군중대회를 평양에서 열었다고 9일자 노동신문이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사진/뉴스1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