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 못할 수 있다" 핀테크업체에 으름장 놓는 금융사들
법정가면 3~4년 걸리고 소송비용도 부담…승산없는 싸움 탓 회유·협박에 굴복하기도
"생태계 조성하겠더니" 판만 벌리고 손 놓은 금융당국
2016-02-01 06:00:00 2016-02-01 08:42:16
 #1. 비대면 실명확인 기술을 보유한 A 업체는 시중은행에 특허를 침해받았다는 이의를 제기한 상태다. 초기부터 은행 측 관계자들에게 보유기술에 대해 설명해주는 자리를 여러 차례 갖고 기술 적용 문제를 협의해왔는데, 이 은행이 일방적으로 다른 회사와 계약해 비슷한 서비스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2. 최근 시중은행과 기술 제휴 협약을 맺은 B 업체 대표는 아직도 기술 유출에 대한 걱정이 많다. 그는 "업무 협약서 내용이 법적인 효력이 없는 데다 상호간의 신의성실의 원칙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강제성이 없다"며 그동안의 협의과정을 보면 이 은행이 언제든 태도가 돌변할 수 있어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 등 금융사들의 핀테크 기술 착취 논란이 일고 있지만 핀테크 정책을 주도하는 금융당국은 소관부처가 아니라며 팔짱만 끼고 있는 상황이다. 주요은행들은 지난해 말부터 핀테크 업체들과 활발히 업무제휴를 맺고 있으나, 정작 업계에서는 금융사들의 갑질 횡포와 기술 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흘러 나오고 있다.
 
한 핀테크업체 관계자는 "기술 설명회를 하거나 요청 자료를 여러차례 제출해줬지만, 결국 '우리가 구축하겠다'는 통보를 해온다"며 "그러고는 IT 자회사나 기존 시스템구축업체들과 계약을 맺고 유사한 금융서비스를 내놓는 일이 다반사"라고 말했다.
 
실제 최근 신한은행이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는 핀테크업체 토마토파트너의 경우 비대면 방식의 계좌 개설 시스템에 대해 은행측 관계자들과 수차례 논의했음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러운 중단 통보와 함께 일방적으로 배제 당했고, 은행측은 이 업체 보유 특허와 비슷한 내용의 서비스를 출시했다.
 
핀테크업계에서는 금융사들의 갑질 횡포 사례가 끊이질 않고 있지만 관련 내용이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자칫하면 큰 손해를 입고 회사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중소 핀테크업체 대표는 대형 은행이 특허를 무단 침해했다며 소송까지 냈지만 관련 내용에 대해 함구했다. 그는 "대표 개인 차원에서 은행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고 얼버무렸지만, 이 업체는 은행과의 소송전으로 국내 영업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해져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한 시중은행과 특허 분쟁을 벌였던 다른 업체는 장사를 못하게 만들겠다는 협박까지 들었다고 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은행권 차원으로 특허대응 공동체를 형성해 금융권에서 퇴출 시키겠다는 협박을 듣기도 했다"며 "특허를 인정받는 선에서 합의해 이제 겨우 평판을 회복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다수 업체들은 기술 유출 의혹이 있어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분쟁은 최대 3년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아 중소기업이 법의 힘을 빌리기도 쉽지 않다. 실제로 특허분쟁소송 등에서 중소기업이 이기는 경우란 거의 없다.
 
새누리당 이현재 의원에 따르면 지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침해소송의 패소율이 89.9%에 달했다. 본안소송까지 진행된 20건 중 중소기업이 승소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또 더불어민주당 부좌현 의원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우리나라의 특허무효심판 인용률은 53.2%로, 미국(40.7%), 일본(20.6%)에 비해 상당히 높게 나타났다. 특허무효심판이 중소기업 기술탈취를 위한 수단이 되고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핀테크 기술의 사각지대가 존재하지만 금융당국은 팔짱을 끼고 있는 상태다. 특허 분쟁은 관할 부처인 특허청에 문의하거나 법적 절차를 밟으면 된다는 설명만 되풀이 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많은 금융사들이 핀테크 스타트업과 제휴 관계를 맺고 정상적으로 진행하는 걸로 알고 있다"며 "법적인 문제가 발생한다면 법에 따라 처리하거나 창조경제혁신센터 등에 자문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핀테크 업체 관계자는 "혁신센터 등이 대부분 정부가 주도적으로 만들고 대기업들의 후원을 받는 구조이기 때문에 분쟁을 해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종용·김동훈·김형석기자 yong@etomato.com 
 
그래픽/뉴스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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