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은행, 기술금융평가기관(TCB)이 각자의 입맛에만 맞는 기술금융 개선안을 주장하다 보니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여신심사 절차 개선에 방점을 찍었으나, 은행들은 내심 기술 평가 실패에 따른 리스크가 줄어들길 바라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일부 TCB사는 내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평가 절차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기술금융의 질적 쇄신'이란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서도 속으로는 각자 다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어, 관련 제도가 산으로 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와 은행, TCB사들은 기술금융의 질을 높이는 데 혈안이 되 있다. '무늬만 기술금융'이란 세간의 비난을 잠재우고, 기술금융의 취지를 되살리기 위해서다.
먼저 금융위원회는 이같은 기술금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6월부터 지금까지 '기술신용대출 정착 로드맵'에 따라 은행 자체 신용평가 능력을 배양하는 한편, 기술 평가의 질을 높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서울 한 은행의 대출 상담 창구 모습. 사진/뉴시스
금융위는 올 하반기에 한도증액 없는 대환 및 재약정을 실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강수도 뒀다. 이제는 단순 만기연장은 인정이 안되고 기술금융 신규 대출이나 만기연장시 대출 규모가 증액되야만 실적이 된다. 평가 시스템이 바뀐 셈이다. 이전에는 일반 대출로 1억원의 돈을 빌렸던 기업이 기술금융 명목으로 만기를 연장해도 그것을 실적으로 인정했다.
금융위는 이런 방식으로 기술금융의 본 취지를 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은행의 생각은 다르다. 은행의 등을 떠미는 식으로 신규 대출을 늘릴게 아니라 기술금융에 따르는 리스크를 은행이 고스란히 떠안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리스크을 나눠지는 시스템이 있어야, 기술력이 있는 기업에 더 많은 자금이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TCB인 기술보증기금 등이 은행의 기술금융대출에 따른 신용위험을 인수해 이를 기초로 채권을 발행해 시장에 유통하는 방안도 나온다. 은행권 관계자는 "기술금융의 수혜는 기업이 받고 리스크는 은행이 지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TCB의 해법은 은행과 금융위와 구별된다. TCB 중 하나인 한국기업데이터의 노동조합 측은 기술력이 지닌 회사가 TCB에 직접 기술 평가를 의뢰하고 금융기관이 그 평가 수수료를 부담하는 식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한다. 기술평가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기술 평가 직원들의 처우를 개선해 주면 평가의 질 또한 높아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윤주필 한국기업데이터 노조위원장은 "기업이 평가 의뢰를 TCB에 직접 하면 기술평가의 적절성과 변별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같은 주장에 은행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TCB사가 이익을 확대하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중 은행권 기술금융부 관계자는 "애초에 TCB는 은행의 여신 심사 결정을 도와주는 역할이었다"며 "TCB는 평가 건수에 따라 수수료를 받으니, 유리할 수 있으나 당초 취지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현재 은행은 기술평가 한 건당 TCB사에 75만원의 수수료를 내고 있다.
한편, 윤동욱 금융위 산업금융과 사무관은 "우수한 인력을 뽑아 기술평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TCB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건은 해당 기업이 개별적으로 결정할 문제이지, 우리가 관여한 일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윤석진 기자 ddagu@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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