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회 인하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관의 출세가 대세인 듯하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에 이성호 서울중앙지법원장이 내정되었다. 현 정부 들어 감사원장으로 황찬현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최성준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임명되었다. 벌써 세 번째이다. 지난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김황식 대법관이 감사원장, 총리직을 수행했다. 김황식 전 총리는 최근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이처럼 고위직 법관이 곧바로 정부의 고위직으로 진출하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다. 별다른 저항도 없어 보인다. 청문회나 인사검증도 쉽게 통과된다. 오랫동안 법관으로 재직했으니 정치적으로 큰 하자가 없고 다른 직역보다 청렴한 것으로도 보인다. 그리고 우리 정치 수준을 생각해보면 법관이 정부를 이끌면서 법률적 기준을 제공한다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법관의 출세는 법치주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법관의 출세는 법치주의를 좀 먹고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위기에 빠뜨린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사법부의 신뢰를 떨어뜨린다. 법관의 출세와 법치주의는 반비례관계인 것이다.
법관은 사법부의 구성원이다. 그리고 사법부의 생명은 독립이다. 사법부의 독립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다. 따라서 법관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에만 법관은 정치권력을 견제할 수 있다. 공권력이 권한을 남용하여 죄없는 사람을 체포하거나 고문을 가할 때, 정당한 이유없이 시민의 재산을 빼앗을 때 법관은 재판을 통하여 공권력을 견제해야 한다. 사법부를 인권의 최후 보루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법관이 태생적으로 정치권력과 긴장관계에 있다는 것은 법관의 신분보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 헌법은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고 하여 법관의 신분을 보장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검사는 헌법이 아닌 법률에서 신분을 보장할 뿐이다. 법관에게 신분을 보장한 것은 법관이 정치권력의 권한남용을 견제했을 때 정치권력으로부터 보복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처럼 사법부의 독립은 법관의 임명과 이동, 승진과 퇴직 과정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어야 하는 것을 말한다. 나아가 법원은 정치권력의 간접적인 영향에서도 벗어나 있어야 한다. 정치권력과 관련이 있다는 외관 자체가 없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에만 법원은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사법부는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전통을 만들지도, 지키지도 못했다. 우리 사법부는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인권보장의 최후의 보루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다른 누구의 평가가 아닌 법원 자체의 평가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2005년 9월 취임 당시의 평가이다. 나아가 이 대법원장은 권위주의 시대에 국민위에 군림하던 그릇된 유산을 깨끗이 청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로부터 10년도 지나지 않았다. 그동안 사법개혁이 있었지만 사법부는 시민의 편이라는 신뢰는 얻지 못했다.
현재 대한민국 법원과 법관의 급선무는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전통을 만들고 지키는 것이다. 법관의 출세가 아니다. 법원과 법관의 급선무는 정치권력에 영합해 정의를 왜곡시킨 과거를 반성하고 시민의 편에 서는 사법부를 만드는 것이다. 법관 출신이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다. 사법부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되고 정치권력을 견제할 수 있을 때까지 법관의 정치적 출세는 자제되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사법부 내부에서 윤리적으로 금지할 필요가 있다. 사법부의 독립은 정치권력의 민주화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법부의 자기 희생이 있어야 사법부의 독립은 법원의 전통이 될 수 있다.
이 대법원장이 강조했던 사법부의 독립 요구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번에 출세한 고위직 법관들도 이 대법원장의 취임사를 읽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10년도 되지 않아 대법원장의 평가를 휴지통에 처박아 버렸다. 법관이 지키지 않는 사법부의 독립은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다. 법원은 외부의 비판을 수용하라고 요구할 수준도 아니다. 법관들 스스로 대법원장의 평가마저 휴지통에 버리는 수준이다. 고위직 법관을 등용하는 정치권력도 문제이지만 이에 영합하는 고위직 법관들도 법치주의, 사법부 독립의 장애물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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